이런저런 이유로 몇 번이나 중간에 포기했다가, 이번엔 꼭 깨고 말겠다는 결심으로 3년 만에 다시 인스톨.
스샷 팍팍 찍어가며 의욕에 넘쳐 시작한 것까진 좋았는데, 플레이 도중에 스샷을 몽땅 날려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 없이 땜빵을 준비했다.(출처는 소장중인 초회판 CD)

그렇다! 게임 시작부터 최종보스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모험이 위 그림 네 장에 전부 담겨 있는 것이다!
동영상 + 성우 떡칠도 모자라 반전에 속편에 외전까지 찍어내며 플레이어들을 능멸하는 요즘 RPG와 비교하면 얼마나 단순하며 절도있는 내용이란 말인가!(20년 동안 이스로 먹고사는 팔콤도 남의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분들까지 빼놓을 순 없지. 이 모든 고행은 오로지 피나님을 위해!

…그리하여 단숨에 최종보스. 수수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공격패턴은 초극악! 사방에서 날아드는 총알은 둘째치고, 공격을 명중시킬 때마다 바닥이 무너져내리는 X같은 시추에이션이라니. 그나마 달랑 하나 있는 회복아이템도, 갖가지 효과를 가진 링도 보스전에서는 무용지물. 오로지 실력만으로 돌파해야 한다.
'게임플레이 자체는 단순한데 적 패턴이 극악하다'는 팔콤의 전통은 리메이크작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로드를 반복하며 2시간이 넘도록 매달린 끝에 마침내 격파!!!!
보스가 걸치고 있던 망토를 조사해 보면…

이 책 하나 읽으려고 그 삽질을 했단 말이지.

새로운 모험의 땅으로 주인공을 인도하는 이스의 책.

이스 전설의 서장은 여기서 막을 내리고… 못다한 이야기는 최종장인 이스2로.


복잡한 시스템과 외국어의 압박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으로(보스전 제외) 즐긴 RPG였다. 게임세계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BGM, 살아있는 캐릭터들과 함께하다 보면 20년이란 세월의 흐름이 무색하다. 역시 그 시절 게임들은 좋았어. -_-)ず~

그럼 다음은 이스2 이터널 차례로군. 어서 인스톨을….


----------------------------------------------------------------------------------
Commented by 틸더마크 at 2007/06/24 17:40
실은 이터널의 보스전...원작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다르크팩트랑 1시간 가량의 사투를 벌이면서 치를 떨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_-;; 바쥬리온이나 픽티모스도 엄청 어려워졌고...(이거 이렇게 어려웠어?! 싶어서 원작을 다시 해봤는데...웬걸요 -_-) 반대로 이스2 이터널의 보스들은 다 바보가 되어있고...-_-; 우째 이런 일이.

Commented by CARPEDIEM at 2007/06/24 18:17
이스2 이터널은 마지막 보스 빼고는 슈팅게임이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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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RPEDIEM
※외부 사이트에 게재했던 글을 옮겨오면서 일부 수정.


세계대전으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후. 동부의 열도연합공동체(ETU)에서는 차기 주력병기 개발계획 'Next E'가 진행되고 있었다.
인간과 병기가 융합된 새로운 개념의 생체컴퓨터 'E시리즈'. 이들은 조정상태에 따라 타입 화이트(자율사고형)/블랙(절대복종형)으로 나뉘어, 정식채용을 위한 최종 운용테스트에 임하게 된다.



▷간단 소개
코가도 스튜디오의 곰돌이팀에서 2006년 발매한 턴제 전략게임. 전투 파트의 난이도를 낮추고 주역캐릭터로는 메카 + 미소녀, 여기에 유명 성우들을 기용하여 시뮬레이션과 미소녀 게임 팬층을 모두 목표로 삼은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체험판 다운로드 가능)


▷전투 파트 - 액티브 턴을 채택한 대전략?
캠페인 모드를 선택하면 플레이어는 E시리즈 타입 화이트의 지휘관 '미하라 소령'이 되어 정식채용을 놓고 타입 블랙과 모의전투를 수행하게 된다. 게임은 「대전략」 시리즈와 흡사한 턴제 시뮬레이션으로, 지도상에 있는 거점을 점령·자금을 입수하면서 병력을 생산해 적을 제압하는 방식이다.
단, 아군과 적이 교대로 움직이는 일반적인 턴제와 달리 본작은 유니트 종류나 행동여부에 따라 이후의 행동순서가 달라지는 액티브 턴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으며, 파워돌 시리즈와 같이 '시야'라는 개념이 존재해서 아군의 수색범위 밖에 있는 적은 볼 수도 공격할 수도 없기 때문에, 각 유니트의 성능과 상성을 파악하고 변화하는 전황에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

차세대 병기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게 되는 E시리즈. 왼쪽부터
아이젠(보병), 네이(차량/전차), 유리(포병), 소우카(항공기), 히소카(함선)
상황과 용도에 맞추어 다양한 유니트를 생산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자.

전투는 고풍스러운 2화면 분할식. 선공이 반격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기왕 성우를 쓸 바엔 기합이나 비명소리도 넣고 그럴싸한 연출을 해 주었더라면.

지도상의 거점을 점령하면 획득자금이 늘어나고, 공장이나
공항같은 생산시설에서는 추가로 유니트를 생산할 수 있다.

아군 승리로 미션이 끝나면 플레이 내용에 따라 랭크가 매겨진다. 생환율과
제압률이 높더라도 기준 턴수보다 빨리 클리어하지 못하면 S등급을 받을 수 없다.

격추수를 올려 포인트가 모이면 추가 복장을 구입한다. 각종 능력치를 올려주지만
생산비용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있다. 미션을 시작하기 전에 교환장착 가능.


챌린지 모드에는 단편 시나리오 20개가 준비되어 있으며 캠페인 모드에서 클리어한 맵도 다시 즐길 수 있다. 캠페인에서 받은 평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좋은 성적을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재도전!

맵 에디트 모드는 초기배치, 날씨, 생산조건 등 게임에 적용되는 모든 요소를 직접 조정하여 독창적인 미션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건너 몇몇 팬사이트에서는 자기가 만든 맵 파일을 서로 교환하여 즐기는 게시판도 운영중.

색칠공부하는 기분으로 슥삭슥삭~



▷어드벤처 파트 - 무난한 스토리, 매니악한 패러디
캠페인 모드의 각 스테이지 사이에는 인터미션 형식의 어드벤처 파트가 삽입되어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곳곳에 블랙유머와 매니악한 군사물 관련 패러디가 난무한다. 그것도 「파이어 폭스」나 「A특공대」부터 「붉은 10월호」에 「건담SEED」 등등, 지명도나 연대, 매체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종합선물세트. '군사물 + 미소녀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의식한 계산인지, 아니면 단순히 작가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원전을 아는 사람은 미하라 소령과 E시리즈들이 나누는 만담(?)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스토리 자체는 딱히 모나지도 않고 밋밋하지도 않은 평범한 내용. 단순한 모의전투에서 군 내부의 알력 → 외국과의 마찰로 스케일이 커지며, 소소한 반전이나 복선도 준비되어 있다.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시나리오는 덤 취급을 받는 것이 보통인데, 본작은 온갖 패러디와 캐릭터들의 톡톡 튀는 대화, 이를 잘 소화해낸 실력파 성우들의 연기 덕분에 그럭저럭 읽는 맛이 있다. 군사 관련 패러디나 성우를 보고 구입한 사람이라면 꽤 만족스러웠을지도.

대륙군의 위대하신 지휘관 슈탈힌 장군. 모델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

(화장중인 네이에게)"언니, 왜 거울 앞에서 얼굴을 토닥거려요? 찌메리트 코팅?"
"울부짖는 로터! 울려퍼지는 '발퀴레의 비행!' VIVA, 지옥의 묵시록!"
…이런 대사를 들으면서 조용히 미소짓는 당신은 밀리터리 매니아.



▷플레이 감상
어드벤처 파트는 선택지도 없고 게임 진행과는 상관없는 부분이므로, 플레이 감상이라고 해도 사실상 전투 파트에 대한 불평불만과 험담이 전부.

1. 작고 보기 불편한 지도화면
지도가 너무 작아서 유니트를 알아보기가 힘들다. 후반으로 가면서 맵이 넓어지고 병력이 많아지면 화면에 손대기가 싫어질 지경.
다른 지점을 보기 위해선 일일이 클릭으로 지도를 움직여야 하는 것도 짜증. 스크롤 타입 설정 옵션이나 미니맵 정도는 구세기 작품에도 기본으로 딸려 있는 기능이다.

화면 해상도에 비해 지도 크기가 작아서 유니트들을 눈으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2. 슬라임 수준으로 멍청한 AI
체력 100이면서 빈사지경에 빠진 적을 앞에 두고 후퇴하거나, 연료와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바로 곁에 있는 아군 도시를 지나쳐 그대로 돌격하는 환상적인 인공지능. 실수로 아군 유니트에 대고 '위임(おまかせ)'을 클릭했다면 곧바로 마우스를 내던지고 싶어질 것이다. 게임 후반에 병력이 너무 많아져서 일부러 숫자를 줄이고 싶을 경우가 아니라면 이 메뉴의 존재가치는 찾을 수 없다.

3. 불합리/불친절한 시스템
세이브가 전투화면에서만 가능. 특정 대화를 다시 보거나 장착한 복장을 교체하려면 긴긴 인터미션을 처음부터 다시 지켜봐야 한다.
게임중 메뉴에는 '로드'가 없다. 세이브를 불러오려면 게임 중간에 항복 → 재시도 NO → 초기화면으로 나가는 번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참 열올리며 플레이하던 도중에 '미션 실패', '항복'같은 글자들을 보게 되면 정신건강에도 좋을 리 없다.
전투화면에서는 우클릭이 취소버튼이면서, 타이틀 메뉴나 세이브/로드화면에서는 좌·우클릭이 모두 결정버튼이라는 터무니없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세이브할 곳을 잘못 눌렀다가 취소하려고 무심코 우클릭을 했더니 덮어쓰기가 되더라'는 피눈물나는 사연도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그렇게 우클릭이 소중하면 왼손잡이용 마우스 설정을 옵션에 넣든지. 이건 아무리 봐도 플레이어 엿먹이기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게임 내 옵션은 볼륨조절, 화면효과 ON/OFF가 전부.
이런 썰렁한 옵션화면은 건발키리 이후 오랜만이군….


4. 가장 치명적인 결점 - 유니트간 능력치 밸런스가 엉망이다!!
우선, 턴제 전략게임에는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ZOC(주1)가 없어서, 적들이 밀집해 있든 인접해 있든 모든 유니트는 언제나 자신의 최대 이동력만큼 움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선(戰線)의 존재가 유명무실해지고, 길목을 막아 거점을 방어하는 등의 전략적인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동력이 높으며 지형에 영향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항공기 유니트가 병력 운용에서 자연스레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전투기의 넓은 시야와 우수한 이동력, 폭격기의 강력한 화력과 상성(전투기를 제외한 모든 유니트에 대해 압도적으로 우세), 헬기의 수송능력과 대지공격력. 본작에서 소우카가 지닌 능력은 가히 만능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항공기들이 공항이 아닌 공장이나 항구, 심지어 일반 도시에서도 보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연료가 적다는 약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맵의 크기가 커지는 게임 후반에는 그녀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제심이 강하거나 불리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즐기는 M틱한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초반엔 돈 모일 때까지 참고 견뎠다가 나중에 소우카 왕창 뽑아내서 머릿수로 밀어붙이기' 같은 단순 패턴이 스테이지마다 반복될 뿐. 작전이니 전술이니 운운할 구석이 없다.

이에 비해 유일하게 소우카에게 천적이 될 수 있는 유리(포병)는 행동순서와 이동력이 처지고, 사정거리와 공격력 부족으로 극초반 몇몇 스테이지를 제외하면 활약할 기회가 없다. 심하게 말해서 '초기배치 이외에는 전혀 생산하지 않아도' 마지막까지 클리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히소카(해군) 또한 연료가 턱없이 부족하고, 폭격기 → 해군유니트는 공격이 되면서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는 이해할 수 없는 상성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바다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데다 그나마도 전함은 해안에 접근 불가이며, 일부 스테이지에서는 아군 항구에 진입할 수 없는 오류(버그가 아닌 지형데이터의 처리 실수) 때문에 버린 말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공격력은 형편없어도 도시 점령으로 포인트를 벌 수 있는 아이젠이나 초중반에 활약하는 네이와는 달리, 이들은 마지막까지 버린 자식 취급을 받으며 플레이어의 사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런 문제들은 복잡한 디버깅을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상 버그가 아니라, 간단한 후반점검이나 몇 차례 테스트 플레이로도 쉽게 발견·수정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제작진의 사후관리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발매 후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패치에는 이러한 문제점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아서, 제작사의 조치를 기다리다 못한 몇몇 팬이 밸런스와 오류를 수정한 패치를 직접 만들어 인터넷에 배포하는 일까지 있었다. 비싼 게임을 구입해 주고 패치까지 손수 만들어내는 기특한 유저들을 보며 제작진들은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렸을까?

주1 : Zone of Control의 약자. 개별 유니트가 주위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를 뜻하며, 「밴티지 마스터」, 「SFC판 마장기신」 등 대부분의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에 기본적으로 채용되어 있는 규칙. '이동중에 적 유니트와 인접했을 때 남은 이동력에 관계없이 그 자리에서 행동이 종료되는 현상'은 게임에서 ZOC가 적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예이다.

유니트 주위에 적용되는 ZOC.(진한 네모)


지도를 잔뜩 메운 내 파란 세이버 소우카.
이쯤 되면 전술이나 부대 운용은 안드로메다 저 너머로.

최종 스코어의 어마어마한 격차. 그야말로 '소우카 최강전설'!



▷총평 + 넋두리
캐릭터나 메카닉 디자인은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해 내 취향에 딱이다. 성우 연기는 훌륭하다. 평범하긴 해도 시나리오 역시 무난하다.
하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불합리/불친절의 덩어리와도 같은, 그나마도 만들다가 중간에 대충 얼버무린 듯한 어설픈 게임 시스템과, 일부 유니트의 존재가치를 무색하게 만드는 허접한 밸런스 때문에 전투 파트의 완성도는 동인게임에도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수준이 되고 말았다. 한때 PC용 전략게임으로 이름을 날렸던 회사, 명작으로 불리운 시뮬레이션 시리즈를 제작했던 팀이 만든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
이렇게 어정쩡한 품질이라면 미소녀 게임 팬들에게는 '전투화면이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시뮬레이션 팬들에게는 '캐릭터와 성우 빼면 그만인 물건'이라고 싸잡아 비난을 듣는 것도 당연한 결과이다. 정통 시뮬레이션은 토끼팀(파워돌, 시퀀스 팔라디움 등) 전문이니 곰돌이팀 작품은 어쩔 수 없다고? 유감이지만 슈발츠쉴트 시리즈를 기억하고 있는 올드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변명.
이녀석을 '전략게임'으로 여기고 플레이할 바엔 차라리 「패미콤 워즈」나 「택틱스 오우거」같은 과거의 명작들을 즐기는 편이 훨씬 재미있고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곰돌이팀 하면 트리스티아! 나노카 만세! '안 입었다' co2a 최고!
슈발츠쉴트?? 누가 기억합니까 그런 구시대의 유산.
에? 작품목록에 아직 있다고?! 치우는 걸 깜빡했네.


신선하진 않아도 먹음직한 재료(전략 시뮬레이션 + 메카미소녀)에, 양념이나 도구(시나리오, 캐릭터, 성우)도 나쁘지 않았다. 조리와 뒷마무리만 똑바로 되었다면 훨씬 괜찮은 물건이 나왔을 텐데… 매상 뻥튀기를 위한 '결산월에 신작 몰아치기'가 관례처럼 되어버린 지금 처지에서 제대로 된 디버깅이나 베타테스트를 바라는 것은 역시 무리일까?(주2)
회사의 간판으로 90년대를 헤쳐왔던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황혼을 맞이하고, 미소녀와 모에(萌え)로 중무장한 신작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 현재의 코가도 스튜디오를 바라보며, 이들의 예전 작품을 좋아하는 팬으로서는 복잡한 기분이다.

주2 : 현재 코가도 스튜디오의 결산은 6·12월(2004년까지는 3·9월)로, 신작들이 나오는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제작팀마다 여건에 차이는 있겠으나, 이 시기에 발매되었던 「파워돌3」, 「파워돌6」, 「상황개시!」 등의 완성도와 해당 작품에 대한 평가를 생각해 볼 때, 결산에 쫓긴 무리한 제작일정이 부실한 후반작업과 각종 버그, 결과적으로는 작품수준의 저하로 이어진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게임성과 캐릭터(또는 시나리오)를 양립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성공한 작품은 분명히 있다.
과거의 코가도 작품들도 그러했고… 부탁이니까 자꾸 옛날타령하게 만들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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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RPEDIEM
※외부 사이트에 게재했던 글을 옮겨오면서 일부 수정.


여러 가지 의미에서 충격적이었던 GGXX #R의 한국 정식발매판.
지금은 게임시장에서 철수한 YBM시사의 로고가 눈에 밟힌다.

2003년 정식발매된 「길티기어 이그젝스 샤프 리로드」의 한국판은 일본에서 따로따로 출시된 2개의 타이틀(로보카이가 없는 GGXX, 로보카이가 나오지만 스토리 모드가 삭제된 GGXX #Reload)을 하나로 합쳐 발매하면서, 이와 함께 텍스트·음성 완벽 한국어화 + 전 BGM 신규작곡 + 덤으로 일판·한국판의 음성과 BGM이 동시 수록이라는 전대미문의 스펙으로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화제거리는 '마왕' 신해철이 작곡하고 N.EX.T 멤버들이 연주한 한국판만의 새 BGM.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던 대전게임, 더구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타이틀에 5만원이란 적지않은 돈을 덜컥 들이붓게 된 것은 순전히 초회판 부록으로 딸려오는, 한국판 BGM 40곡을 수록한 CD 2장짜리 사운드트랙 때문이었다.


앨범 표지를 장식한 마왕. 게임내 캐릭터인 테스타먼트의 성우도 맡아 열연.
제대로 된 플라스틱 케이스가 아니라 얄팍한 종이케이스인 것이 못내 아쉽다.


DISC 1
01. Labyrinth of Souls (Opening)
02. Redemption (Character Select)
03. VS
04. Starchaser (Sol Badguy's Theme)
05. Pillars of the Underworld (Ky's Theme)
06. Get Out of My Way (May's Theme)
07. The Great Empress (Millia's Theme)
08. Dementia (Eddie's Theme)
09. Megatona Furioso (Potemkin's Theme)
10. Child of the Wild (Chipp's Theme)
11. Take the Pain (Faust's Theme)
12. Dogs On the Run (Axl's Theme)
13. Ricochet (Baiken's Theme)
14. Riding the Clouds (Anji's Theme)
15. Keeper of the Unknown (Venom's Theme)
16. Desert Dust (Johnny's Theme)
17. Sticks and Stones (Jam's Theme)
18. In the Arms of Death (Testament's Theme)
19. Tears are Forever (Dizzy's Theme)
20. Fighting (Continue)


DISC 2
01. Vortex Infinitum (Robo-Ky's Theme)
02. The Vampire Saga (Slayer's Theme)
03. Blacklight Babe (I-NO's Theme)
04. Crash and Burn (Bridget's Theme)
05. Seizures (Zappa's Theme)
06. Vengence is Mine (Kliff's Theme)
07. The Day of Judgement (Justice's Theme)
08. Revelations (Sol vs Ky)
09. Faith Shall Save Thee (Sol vs Ky Type-EX)
10. Red Crossroads (Millia vs Eddie Type-EX)
11. Ditto (Same Character)
12. Dead Silence (Same Character Type-EX)
13. Rogue Hunters (Assassins)
14. The Midnight Carnival (Last Battle)
15. Latez (Arcade Mode Ending A)
16. Run till Tomorrow (Arcade Mode Ending B)
17. Dance of the Behemoth (Arcade Mode Ending C)
18. Final Opus (Survival Mode Ending)
19. Options
20. El Fin (Game Over)


일본판의 오리지널 BGM이 빠른 템포와 역동적인 흐름으로 캐릭터와 스테이지에 최적화된 '게임음악스러운 곡'을 추구했다면, 한국판의 새 BGM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정형화된 캐릭터상에 얽매이지 않고 작곡자의 뇌리에 떠오른 이미지 그대로를 자유로이 그려냈다. 속도감을 앞세운 일본판에 비해 헤비메탈 본연의 묵직한 분위기를 중시한 한국판의 곡들은 오리지널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스테이지에 불어넣고 있으며, 팬이라면 대번에 '신해철표'임을 알 수 있는 화려한 신디사이저는 기타 위주의 전개로 자칫 늘어질 수도 있는 곡을 중간중간에서 탄탄히 조여 주고 있다.
BGM이나 캐릭터송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순수하게 메탈음악으로서 즐긴다면 한국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게임음악으로서도 본작은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며, 특히 1-05, 1-07, 2-02 등은 일본판보다도 캐릭터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멋진 BGM이다.
40곡이나 되는 많은 음악들을 단 2개월만에, 이만한 수준으로 완성해낸 신해철과 N.EX.T 멤버들에게 축배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트랙은
DISC 1 : 02, 05, 07, 09, 13, 17, 18
DISC 2 : 02, 03, 08, 10, 12, 14, 18, 19
등등. 1-02(캐릭터 선택), 2-19(옵션화면)는 질주하는 듯한 속도감을 선사하며 미디엄 템포 위주인 앨범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국판에서 게임 소프트에 부록(비매품)으로 동봉된 이 앨범은, 일본으로 건너가 'Korean Version'이라는 딱지를 달고 정식으로 발매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물건너 팬들로서는 지금껏 익숙하게 들어왔던 BGM과는 사뭇 다른, 낯선 외국 작곡가가 손을 댄 완전 신곡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는 모양이지만, 대체적으로는 '신선하다', '또다른 길티기어'라는 평가를 받으며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 '일본판이 오른쪽에서 바라본 캐릭터 이미지라면, 한국판은 왼쪽에서 바라본 이미지'라는 어느 일본 팬의 코멘트는 이 앨범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표지 귀퉁이에 작지만 또렷하게 적혀 있는 'KOREAN VERSION'.
일본 발매시에는 보너스로 8트랙(BGM 데모버전 + 캐릭터 효과음)이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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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RPEDIEM
취미생활2007. 2. 25. 23:17
확장·수정패치판에 'EXE', OVA가 나오면서 다시
'RESOLUTION'이란 꼬리표가 붙어 이런 긴 제목이 되었다.

원작게임에 대단한 애착을 갖고 있는지라 애니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은근히 기대했던 물건. 발매되고 나서 뚜껑을 열어 보니….

1부가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또한 치명적인 부분은 바로 작화. 원작의 그림체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고, 마치 저예산 18금 애니를 보는 듯한 투박하고 뭉글뭉글한 캐릭터와 뚝뚝 끊어지는 어색한 움직임. 완전히 따로 노는 CG 파트와 셀화 파트의 영상.
2부부터는 그럭저럭 평범한 TV판(!!) 수준으로 돌아오지만, 원작판 캐릭터 디자이너의 표지 일러스트에 낚여 DVD를 구매했을 대다수 원작팬들에게 1부의 작화는 말 그대로 '재앙'이다. 극장판도 도망갈 초절작화의 TV 애니가 튀어나오는 요즘 세상에, 아무리 마이너 작품이라지만 명색이 OVA인데 이건 아니잖아!
공식 사이트에 실렸던 초기 원화 러프는 곱고 깔끔했는데… 제작 도중에 갑자기 제작진이 교체된 거랑 관계가 있으려나?

오프닝 주제가는 원작판의 리믹스 버전. 이쪽의 묵직한 비트도 나쁘지 않다.
근데 어째서 오프닝·엔딩이 본편보다도 작화가 딸리는 거냐!

량이 탑승하는 붉은 슈미크람. 게임에는 등장하지 않는 오리지널 기체이다.
오프닝의 그 컷도 그렇고… 말하자면 팬서비스?

그림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PS2로 이식할 때도 초호화판이었던 성우진을 그에 못지 않은 유명 멤버들로 다시 전면교체. 원화/동화 비용을 몽땅 성우 캐스팅으로 돌렸나 싶을 정도로 호화롭다.
CG로 재현된 메카닉이나 전뇌공간, 전투신 연출도 그럭저럭. 온가족의 PS2에서도 18추로 나왔던 만큼 PC판 원작(18금)을 연상시키는 과격한 장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단, 원작의 SF적인 세계관과 6명이나 되는 히로인 루트를 20분짜리 OVA 네 편에 구겨넣다 보니 시나리오 전개에는 상당히 무리가 따른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사전설명도 없이 마구 쏟아지는 한자·영어투성이의 전문용어라든지, 이리저리 칼질과 풀칠을 당한 채 광속으로 날아가는 스토리. 원작게임을 수십 차례 클리어하고 번역·공략페이지까지 만들었을 만큼 완전정복을 자부하고 있었는데, OVA를 처음 돌렸을 때는 대사를 챙겨듣기에도 벅차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기엔 무리라는 건 알지만, -18금치고는- 꽤 탄탄한 시나리오도 본작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기에 4부라는 짧은 분량이 아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게임이 좀 더 많이 팔려서 인지도가 높았다면 데몬베인처럼 TV판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CG로 처리된 슈미크람. 원작 느낌이 살아있어서 마음에 든다.

히로인들과 주인공마저 가볍게 씹어버리는 발포 최강의 캐릭터! PS2판과 OVA판 성우 모두 나름대로 열연을 펼쳤지만, 원작 PC판 성우의 광기와 카리스마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결론 :
태생이 그러한 만큼 애니 역시 완전히 팬아이템이다. 원작게임의 세계관과 시나리오를 제대로 이해하며 즐겼고, 1부의 그림을 참고 보아 줄 수 있는 골수팬이라면… 그런 팬이 한국에 얼마나 될까.
파워돌도 그렇고 팬텀도 그렇고, 어째서 내가 좋아하는 게임들은 애니로 나오면 하나같이 다 이렇게 되는 거야…. OTL

OVA판 캐릭터 디자이너 미워!! 작화감독도 미워어어!!!!


관련 링크 :

PS2판 공식 홈페이지(OVA는 PS2판을 기반으로 제작)
http://www.alchemist-net.co.jp/products/bf_exe/

내 홈페이지(루트 공략 및 주요 대사 번역)
http://mine1215.cafe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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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RPEDIEM
※외부 사이트에 게재했던 글을 옮겨오면서 일부 수정.


소꿉친구로 언제나 함께 어울려 지내던 소년과 쌍둥이 자매.
소년에게는 마법악기 '포르텔'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쌍둥이 동생에게는 노래의 소질이 있었다.
동생과 맺어질 거라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소년은 특별한 재능도 없는 평범한 쌍둥이 언니를 애인으로 선택했다.

시간이 흘러 소년과 쌍둥이 동생은 음악의 도시 '피오바'의 음악학교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2년여가 지나는 동안, 머나먼 고향에서 기다리는 애인과 소년을 이어주는 것은 매주 빠짐없이 주고받는 한 통의 편지가 전부.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거리, 그리고 늘 곁에 있는 쌍둥이 동생.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음악의 거리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겨울.
파트너와 함께해야 하는 졸업연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
소년은 아직 파트너를 찾지 못한 채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간단 소개
코가도 스튜디오의 검은고양이팀에서 '뮤직 어드벤처'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텍스트 어드벤처 + 음악게임의 복합 장르물. 시리즈로서는 「엔젤릭 콘서트」와 「엔젤릭 세레나데」에 이은 세번째 작품으로, 2004년 제작.

공식 사이트

내 홈페이지 : http://mine1215.cafe24.com/
단편 스토리, 캐릭터송 번역.

▷게임의 흐름
주인공은 음악학교 졸업을 앞둔 3학년생으로, 졸업연주회에 나가기 위해서 남은 기간 동안 파트너를 물색해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파트너 후보를 찾는 부분은 선택지를 클릭하는 전형적인 텍스트 어드벤처. 파트너가 되는 여학생은 모두 세 명으로, 이 중 한 사람을 계속 만나 호감도를 높이다 보면 해당 인물과의 스토리가 전개되며, 선택지가 많은 편도 아니고 특정한 조건도 없기 때문에 진행상 어려움은 없다.
엔딩은 배드엔딩을 포함해 모두 9개. 처음에 볼 수 있는 건 3개뿐이지만, 모든 캐릭터 루트를 클리어한 다음에는 새로운 시나리오가 등장하여 감추어진 사실과 이야기의 진상이 밝혀지게 된다.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네 명의 여성(+ 요정 하나). 왼쪽부터
메인 히로인인 소꿉친구 토르티니타 피네(토르타)
토르타의 언니이자 주인공의 애인 아리에타(알)
학생회장 출신의 기대주 팔시타 포세트(팔)
포르텔과의 신입생 리셀시아 체자리니(리세)
주인공에게만 모습이 보이는 음악의 요정 포니

파트너(후보)와 함께, 또는 혼자서 연습을 시작하거나 특정 이벤트가 발생하면 음악 파트로 들어간다. 음악 파트는 곡에 맞추어 적절한 타이밍에 키를 입력해야 하는, 「비트매니아」 등으로 익숙한 리듬게임 형식.
연주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영어 자판을 익혀야 하지만, 초보자를 위해 옵션에서 3단계로 난이도 조절이 가능하고, 그래도 힘들다면 자동연주 옵션을 ON으로 지정해서 무조건 성공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매번 연주를 반복하기 귀찮거나 어드벤처 파트만을 즐기고 싶은 경우 사용하면 편리하다.

연주에 쓰이는 키는 최소 4개(EASY)에서 최대 30개(HARD). 영어 자판을 연습해 두어야 한다.
정품을 구입했다면 음악 파트의 득점을 제작사 홈페이지에 등록하여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플레이 감상
그림 :
여리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주는 부드러운 그림체. 여성 캐릭터들의 외양이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분위기는 잘 표현하고 있다. 대화시에 미묘하게 변화하는 표정을 살펴보는 것도 잔재미의 하나.
이벤트CG의 수가 적고, 화질도 일반 대화용 CG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

음악 :
캐릭터송을 포함한 모든 음악은 故 오카자키 리츠코(岡崎律子) 여사가 담당. 오프닝과 엔딩은 그녀가 직접 보컬을 맡았다.
장소나 대화상대에 맞추어 다른 곡으로, 혹은 조금씩 변주되며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은 작품의 테마인 ‘비’의 느낌을 살려내며 플레이어를 게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 준다. 특히 캐릭터 성우들이 직접 부르는 보컬송은 음악 파트와 이벤트에서 사용되어 그들이 놓인 처지와 각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게임에 등장했던 보컬곡은 Free Play에서, 배경음악은 Music 메뉴에서 자유롭게 연주/감상 가능.


오프닝 「空の向こうに」

오프닝 동영상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스탭은 '그녀'이다.
스토리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보컬송의 가사. 엔딩을 보고 다시 감상하면 싱크로율 200%.

시나리오 :
제작사 홈페이지의 프롤로그나 게임 타이틀 화면을 보았을 때의 첫 느낌은 「PS판 투하트」(주1)처럼 ‘학창생활을 그려나가는 평범하면서도 따스한 이야기’였다. 참고삼아 일본 웹사이트를 뒤져보니 스토리가 어둡다는 평이 많았지만 실제로 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 「for RITZ」(주2) 앨범의 곡들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했다는 것도 플레이를 결심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평범한 일상의 대화, 잔잔하면서도 섬세한 심리묘사. 너저분한 설명이나 쓸데없는 개그/패러디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깔끔담백한 문장. 도입부는 첫인상 그대로의 분위기로, 촉촉한 봄비와도 같이 조용히 막을 열었다.
하지만 점차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차게 퍼붓는 장마비처럼 우울하고, 잔혹하고, 플레이어의 감정선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그야말로 '막 나가는' 스토리. 야한 장면이나 폭력적인 묘사는 일체 없으면서도, 도중에 일어나는 부조리한 사건들과 뒤틀린 인간 내면을 그대로 까발려 보이는 캐릭터들의 행동은 이 게임이 진짜 전연령 대상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도중에 몇 번이고 마우스를 내던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림과 음악을 방패막이로 삼지 않았다면, 모든 엔딩을 보아야 숨겨진 최종 루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하드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잔혹치정극, 사이코 호러, 반전게임…
그림이나 음악만 가지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진다.

기본 캐릭터 세 명의 엔딩을 보면 출현하는 알 피네(al fine - 음악용어로 ‘끝까지’) 루트는 제3자의 눈으로 이야기를 되돌아보며, 주인공 시점에서는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차례차례 플레이어에게 확인시켜 준다. 슬프고 안타까운 내용은 변함없지만, 모든 진실을 알고 나자 그때까지의 울적하고 답답한 기분은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 루트에서는 본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스토리의 압박을 견디며 끝까지 따라와 준 플레이어를 위한 선물? 한없이 우울한 본편에 비하면 행복한 엔딩임에는 틀림없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알 피네 루트에서…(이하 생략).

※ 주1 : 1997년에 PC용 미소녀게임 제작사인 리프에서 ‘비주얼 노벨’이라는 브랜드로 제작한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어두운 분위기의 전작들과는 달리 평범한 학교생활과 잔잔한 일상을 따스하게 그려내며 호평과 함께 대히트를 기록,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고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2004년에 PS2로 속편이 제작.
굳이 본문에서 ‘PS판’이라고 기종을 구별한 것은 원작인 PC판이 18금 작품이기 때문이다.

※주2 : 오카자키 여사가 자신의 목소리로 가녹음해 두었던 본작의 보컬곡들을, 그녀가 사망한 뒤에 후반작업을 거쳐 발매한 음반. 동일한 곡을 게임의 성우들이 부른 캐릭터송 앨범 「RAINBOW」도 발매되었다.



▷총평
포근한 CG와 아름다운 음악, 깔끔한 텍스트… 그러나 이 모두를 집어삼켜 버리는 어둡고 무거운 스토리, 그리고 다른 텍스트 게임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지극히 현실적인 자기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캐릭터들.
전연령 딱지를 달고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21금을 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내용이다. 부조리극이나 우울한 심리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림만 보고서 평범한 미소녀물로 착각하고 플레이한다면 낭패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음악만은 작품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게임 스토리나 오카자키 여사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묘약이 될 테니까. 「for RITZ」 앨범은 가사 번역집이 동봉된 라이센스반으로 한국에 정식발매되어 있으니 구입하여 감상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분기가 복잡하거나 글씨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녀석은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텍스트 게임 중에서도 가장 힘들게 끝을 본 작품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임 속에서 현실세계만큼이나 우울하고 잔혹한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인간들 못지않게 냉정하고 계산적인 캐릭터들. 텍스트 게임을 할 때는 감정이입이 심한 편이기에 ‘꿈도 환상도 없는’ 이런 식의 전개는 견디기가 더욱 힘들었다. 도중에 플레이를 포기하고 접어버렸다면 아마도 게임인생에서 다시는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흑역사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엔딩을 클리어하고 나서 후회스러운 기분은 들지 않는다. 바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잠깐씩 접하게 되는, 어찌 보면 일종의 현실도피라고도 할 수 있는 게임화면 속에서, 이토록 잘 다듬어진 ‘또다른 세계’와, 그 안에서 각자의 위치에 충실한 생생한 캐릭터들을 만나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게임과 나를 하나로 이어준 아름다운 BGM과 캐릭터송. 오카자키 여사의 음악을 빼고 「심포닉 레인」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이야기, 그리고 훌륭한 음악을 만나게 해 준 제작사와 음악가에게 감사를.

언젠가는 끝이 날 거야
끝이란 건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멈추지 않는 비는 없어
그러니까 괜찮아, 문제없어.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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