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사이트에 게재했던 글을 옮겨오면서 일부 수정.


소꿉친구로 언제나 함께 어울려 지내던 소년과 쌍둥이 자매.
소년에게는 마법악기 '포르텔'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쌍둥이 동생에게는 노래의 소질이 있었다.
동생과 맺어질 거라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소년은 특별한 재능도 없는 평범한 쌍둥이 언니를 애인으로 선택했다.

시간이 흘러 소년과 쌍둥이 동생은 음악의 도시 '피오바'의 음악학교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2년여가 지나는 동안, 머나먼 고향에서 기다리는 애인과 소년을 이어주는 것은 매주 빠짐없이 주고받는 한 통의 편지가 전부.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거리, 그리고 늘 곁에 있는 쌍둥이 동생.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음악의 거리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겨울.
파트너와 함께해야 하는 졸업연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
소년은 아직 파트너를 찾지 못한 채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간단 소개
코가도 스튜디오의 검은고양이팀에서 '뮤직 어드벤처'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텍스트 어드벤처 + 음악게임의 복합 장르물. 시리즈로서는 「엔젤릭 콘서트」와 「엔젤릭 세레나데」에 이은 세번째 작품으로, 2004년 제작.

공식 사이트

내 홈페이지 : http://mine1215.cafe24.com/
단편 스토리, 캐릭터송 번역.

▷게임의 흐름
주인공은 음악학교 졸업을 앞둔 3학년생으로, 졸업연주회에 나가기 위해서 남은 기간 동안 파트너를 물색해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파트너 후보를 찾는 부분은 선택지를 클릭하는 전형적인 텍스트 어드벤처. 파트너가 되는 여학생은 모두 세 명으로, 이 중 한 사람을 계속 만나 호감도를 높이다 보면 해당 인물과의 스토리가 전개되며, 선택지가 많은 편도 아니고 특정한 조건도 없기 때문에 진행상 어려움은 없다.
엔딩은 배드엔딩을 포함해 모두 9개. 처음에 볼 수 있는 건 3개뿐이지만, 모든 캐릭터 루트를 클리어한 다음에는 새로운 시나리오가 등장하여 감추어진 사실과 이야기의 진상이 밝혀지게 된다.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네 명의 여성(+ 요정 하나). 왼쪽부터
메인 히로인인 소꿉친구 토르티니타 피네(토르타)
토르타의 언니이자 주인공의 애인 아리에타(알)
학생회장 출신의 기대주 팔시타 포세트(팔)
포르텔과의 신입생 리셀시아 체자리니(리세)
주인공에게만 모습이 보이는 음악의 요정 포니

파트너(후보)와 함께, 또는 혼자서 연습을 시작하거나 특정 이벤트가 발생하면 음악 파트로 들어간다. 음악 파트는 곡에 맞추어 적절한 타이밍에 키를 입력해야 하는, 「비트매니아」 등으로 익숙한 리듬게임 형식.
연주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영어 자판을 익혀야 하지만, 초보자를 위해 옵션에서 3단계로 난이도 조절이 가능하고, 그래도 힘들다면 자동연주 옵션을 ON으로 지정해서 무조건 성공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매번 연주를 반복하기 귀찮거나 어드벤처 파트만을 즐기고 싶은 경우 사용하면 편리하다.

연주에 쓰이는 키는 최소 4개(EASY)에서 최대 30개(HARD). 영어 자판을 연습해 두어야 한다.
정품을 구입했다면 음악 파트의 득점을 제작사 홈페이지에 등록하여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플레이 감상
그림 :
여리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주는 부드러운 그림체. 여성 캐릭터들의 외양이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분위기는 잘 표현하고 있다. 대화시에 미묘하게 변화하는 표정을 살펴보는 것도 잔재미의 하나.
이벤트CG의 수가 적고, 화질도 일반 대화용 CG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

음악 :
캐릭터송을 포함한 모든 음악은 故 오카자키 리츠코(岡崎律子) 여사가 담당. 오프닝과 엔딩은 그녀가 직접 보컬을 맡았다.
장소나 대화상대에 맞추어 다른 곡으로, 혹은 조금씩 변주되며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은 작품의 테마인 ‘비’의 느낌을 살려내며 플레이어를 게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 준다. 특히 캐릭터 성우들이 직접 부르는 보컬송은 음악 파트와 이벤트에서 사용되어 그들이 놓인 처지와 각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게임에 등장했던 보컬곡은 Free Play에서, 배경음악은 Music 메뉴에서 자유롭게 연주/감상 가능.


오프닝 「空の向こうに」

오프닝 동영상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스탭은 '그녀'이다.
스토리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보컬송의 가사. 엔딩을 보고 다시 감상하면 싱크로율 200%.

시나리오 :
제작사 홈페이지의 프롤로그나 게임 타이틀 화면을 보았을 때의 첫 느낌은 「PS판 투하트」(주1)처럼 ‘학창생활을 그려나가는 평범하면서도 따스한 이야기’였다. 참고삼아 일본 웹사이트를 뒤져보니 스토리가 어둡다는 평이 많았지만 실제로 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 「for RITZ」(주2) 앨범의 곡들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했다는 것도 플레이를 결심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평범한 일상의 대화, 잔잔하면서도 섬세한 심리묘사. 너저분한 설명이나 쓸데없는 개그/패러디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깔끔담백한 문장. 도입부는 첫인상 그대로의 분위기로, 촉촉한 봄비와도 같이 조용히 막을 열었다.
하지만 점차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차게 퍼붓는 장마비처럼 우울하고, 잔혹하고, 플레이어의 감정선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그야말로 '막 나가는' 스토리. 야한 장면이나 폭력적인 묘사는 일체 없으면서도, 도중에 일어나는 부조리한 사건들과 뒤틀린 인간 내면을 그대로 까발려 보이는 캐릭터들의 행동은 이 게임이 진짜 전연령 대상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도중에 몇 번이고 마우스를 내던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림과 음악을 방패막이로 삼지 않았다면, 모든 엔딩을 보아야 숨겨진 최종 루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하드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잔혹치정극, 사이코 호러, 반전게임…
그림이나 음악만 가지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진다.

기본 캐릭터 세 명의 엔딩을 보면 출현하는 알 피네(al fine - 음악용어로 ‘끝까지’) 루트는 제3자의 눈으로 이야기를 되돌아보며, 주인공 시점에서는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차례차례 플레이어에게 확인시켜 준다. 슬프고 안타까운 내용은 변함없지만, 모든 진실을 알고 나자 그때까지의 울적하고 답답한 기분은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 루트에서는 본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스토리의 압박을 견디며 끝까지 따라와 준 플레이어를 위한 선물? 한없이 우울한 본편에 비하면 행복한 엔딩임에는 틀림없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알 피네 루트에서…(이하 생략).

※ 주1 : 1997년에 PC용 미소녀게임 제작사인 리프에서 ‘비주얼 노벨’이라는 브랜드로 제작한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어두운 분위기의 전작들과는 달리 평범한 학교생활과 잔잔한 일상을 따스하게 그려내며 호평과 함께 대히트를 기록,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고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2004년에 PS2로 속편이 제작.
굳이 본문에서 ‘PS판’이라고 기종을 구별한 것은 원작인 PC판이 18금 작품이기 때문이다.

※주2 : 오카자키 여사가 자신의 목소리로 가녹음해 두었던 본작의 보컬곡들을, 그녀가 사망한 뒤에 후반작업을 거쳐 발매한 음반. 동일한 곡을 게임의 성우들이 부른 캐릭터송 앨범 「RAINBOW」도 발매되었다.



▷총평
포근한 CG와 아름다운 음악, 깔끔한 텍스트… 그러나 이 모두를 집어삼켜 버리는 어둡고 무거운 스토리, 그리고 다른 텍스트 게임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지극히 현실적인 자기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캐릭터들.
전연령 딱지를 달고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21금을 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내용이다. 부조리극이나 우울한 심리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림만 보고서 평범한 미소녀물로 착각하고 플레이한다면 낭패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음악만은 작품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게임 스토리나 오카자키 여사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묘약이 될 테니까. 「for RITZ」 앨범은 가사 번역집이 동봉된 라이센스반으로 한국에 정식발매되어 있으니 구입하여 감상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분기가 복잡하거나 글씨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녀석은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텍스트 게임 중에서도 가장 힘들게 끝을 본 작품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임 속에서 현실세계만큼이나 우울하고 잔혹한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인간들 못지않게 냉정하고 계산적인 캐릭터들. 텍스트 게임을 할 때는 감정이입이 심한 편이기에 ‘꿈도 환상도 없는’ 이런 식의 전개는 견디기가 더욱 힘들었다. 도중에 플레이를 포기하고 접어버렸다면 아마도 게임인생에서 다시는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흑역사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엔딩을 클리어하고 나서 후회스러운 기분은 들지 않는다. 바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잠깐씩 접하게 되는, 어찌 보면 일종의 현실도피라고도 할 수 있는 게임화면 속에서, 이토록 잘 다듬어진 ‘또다른 세계’와, 그 안에서 각자의 위치에 충실한 생생한 캐릭터들을 만나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게임과 나를 하나로 이어준 아름다운 BGM과 캐릭터송. 오카자키 여사의 음악을 빼고 「심포닉 레인」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이야기, 그리고 훌륭한 음악을 만나게 해 준 제작사와 음악가에게 감사를.

언젠가는 끝이 날 거야
끝이란 건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멈추지 않는 비는 없어
그러니까 괜찮아, 문제없어.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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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RPE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