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출처 : http://www.asahi.com/paper/column20080815.html
《天声人語》 2008.8.15.
人 の数だけ、戦争があった。兵士50人の手記を編んだ『父の戦記』が、先ごろ朝日文庫から復刊された。1965年に週刊朝日が募ったものだ。中に、南仏印 (ふついん)のサイゴンで終戦を迎えた元中尉の作がある▼その日、兵舎では激論と痛飲が繰り返されたという。住民に加勢し、フランス軍と戦おうとする者も いた。逃亡、自決、抑留。何が正義で、何が卑劣か見えぬまま、隊長として全隊70人を集める。日本刀を抜いて、叫んだ▼〈我々が一刻も早く帰還しなけれ ば、敗戦の祖国は一体どうなるのだ。一時の感情に走って道を誤るな。逃亡する奴(やつ)は俺(おれ)が斬(き)る〉。手記には「自分の行動が無性に腹立たしく、恥ずかしくさえ思われた」とある▼過日、別の手記が公開された。終戦の直前、東条英機元首相が心境などを残した直筆メモだ。「もろくも敵の脅威に脅(おび)え、簡単に手を挙ぐるに至るが如(ごと)き国政指導者および国民の無気魂」と、悔しさを時の政府や国民にぶつけている。「新爆弾に脅え、ソ連の参 戦に腰をぬかし」など、随所に徹底抗戦への未練ものぞく▼「新爆弾」にやられた広島と長崎をはじめ、国土は焼け、民は窮乏を極めていた。外地では、補給を 断たれた兵が銘々の処し方を問われた。この期に及んで戦争を正当化するメモは、戦後の感覚からは読むに堪えない▼元中尉の戦争と東条の戦争。誰を主人公とするかで、一つの史実も別の物語になる。昭和という時の巨木に生い茂った、何億もの慟哭(どうこく)の葉。勇ましいだけの裸木に戻さぬよう、一枚一枚、静 かに語り継ぎたい。
그곳에는 사람 숫자만큼 전쟁이 있었다. 1965년에 주간 아사히가 병사 50명의 수기를 모아 펴낸 『아버지의 전기(父の戦記)』가 아사히문고에서 얼마 전에 복간되었다. 본문 중에, 남인도차이나 사이공(현 베트남 호치민)에서 종전을 맞은 중위(당시)의 글이 있다.
운명의 그날, 막사에서는 격한 논쟁이 연이어 벌어지고, 종일 술을 퍼마시는 자도 적지 않았다. 현지 주민들에 가세해 프랑스군과 싸우려는 병사도 있었다. 도망, 자결, 억류…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비겁인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부대원 70명을 집합시키고는, 일본도를 뽑아들고 외쳤다.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귀환하지 않으면 패전한 조국은 어찌 되겠는가! 한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마라. 도망치는 자는 내가 베겠다!"
수기에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도 분하고 부끄럽기까지 했다'고 적혀 있다.
최근에는 다른 수기가 공개되었다. 종전 직전에 토오죠 히데키(東条英機) 전임 수상이 자신의 심경을 적어 남긴 친필 메모이다. '적의 위협 앞에 힘없이 떨면서 간단히 굴복해 버리는 정신나간 국가지도자와 국민들'이라며 당시 정부와 국민들을 향해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신형 폭탄에 겁을 먹고 소련 참전에 넋이 나갔다'는 식으로, 철저항전에 대한 미련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신형 폭탄'을 얻어맞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비롯하여 전 국토는 잿더미가 되고, 국민들은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다. 타지에서는 보급이 끊긴 병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전쟁을 정당화하는 메모는 전후(戦後)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읽을 만한 것이 아니다.
중위의 전쟁과 수상의 전쟁. 누구를 주인공으로 삼느냐에 따라 동일한 역사적 사실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쇼와'라는 시대의 거목에 무성히 돋아난 통곡의 잎. 그저 덩치만 커다란 벌거숭이 나무로 돌아가지 않도록 한 장 한 장씩 조용히 후세에 전하고 싶다.
《天声人語》 2008.8.15.
人 の数だけ、戦争があった。兵士50人の手記を編んだ『父の戦記』が、先ごろ朝日文庫から復刊された。1965年に週刊朝日が募ったものだ。中に、南仏印 (ふついん)のサイゴンで終戦を迎えた元中尉の作がある▼その日、兵舎では激論と痛飲が繰り返されたという。住民に加勢し、フランス軍と戦おうとする者も いた。逃亡、自決、抑留。何が正義で、何が卑劣か見えぬまま、隊長として全隊70人を集める。日本刀を抜いて、叫んだ▼〈我々が一刻も早く帰還しなけれ ば、敗戦の祖国は一体どうなるのだ。一時の感情に走って道を誤るな。逃亡する奴(やつ)は俺(おれ)が斬(き)る〉。手記には「自分の行動が無性に腹立たしく、恥ずかしくさえ思われた」とある▼過日、別の手記が公開された。終戦の直前、東条英機元首相が心境などを残した直筆メモだ。「もろくも敵の脅威に脅(おび)え、簡単に手を挙ぐるに至るが如(ごと)き国政指導者および国民の無気魂」と、悔しさを時の政府や国民にぶつけている。「新爆弾に脅え、ソ連の参 戦に腰をぬかし」など、随所に徹底抗戦への未練ものぞく▼「新爆弾」にやられた広島と長崎をはじめ、国土は焼け、民は窮乏を極めていた。外地では、補給を 断たれた兵が銘々の処し方を問われた。この期に及んで戦争を正当化するメモは、戦後の感覚からは読むに堪えない▼元中尉の戦争と東条の戦争。誰を主人公とするかで、一つの史実も別の物語になる。昭和という時の巨木に生い茂った、何億もの慟哭(どうこく)の葉。勇ましいだけの裸木に戻さぬよう、一枚一枚、静 かに語り継ぎたい。
그곳에는 사람 숫자만큼 전쟁이 있었다. 1965년에 주간 아사히가 병사 50명의 수기를 모아 펴낸 『아버지의 전기(父の戦記)』가 아사히문고에서 얼마 전에 복간되었다. 본문 중에, 남인도차이나 사이공(현 베트남 호치민)에서 종전을 맞은 중위(당시)의 글이 있다.
운명의 그날, 막사에서는 격한 논쟁이 연이어 벌어지고, 종일 술을 퍼마시는 자도 적지 않았다. 현지 주민들에 가세해 프랑스군과 싸우려는 병사도 있었다. 도망, 자결, 억류…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비겁인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부대원 70명을 집합시키고는, 일본도를 뽑아들고 외쳤다.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귀환하지 않으면 패전한 조국은 어찌 되겠는가! 한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마라. 도망치는 자는 내가 베겠다!"
수기에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도 분하고 부끄럽기까지 했다'고 적혀 있다.
최근에는 다른 수기가 공개되었다. 종전 직전에 토오죠 히데키(東条英機) 전임 수상이 자신의 심경을 적어 남긴 친필 메모이다. '적의 위협 앞에 힘없이 떨면서 간단히 굴복해 버리는 정신나간 국가지도자와 국민들'이라며 당시 정부와 국민들을 향해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신형 폭탄에 겁을 먹고 소련 참전에 넋이 나갔다'는 식으로, 철저항전에 대한 미련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신형 폭탄'을 얻어맞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비롯하여 전 국토는 잿더미가 되고, 국민들은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다. 타지에서는 보급이 끊긴 병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전쟁을 정당화하는 메모는 전후(戦後)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읽을 만한 것이 아니다.
중위의 전쟁과 수상의 전쟁. 누구를 주인공으로 삼느냐에 따라 동일한 역사적 사실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쇼와'라는 시대의 거목에 무성히 돋아난 통곡의 잎. 그저 덩치만 커다란 벌거숭이 나무로 돌아가지 않도록 한 장 한 장씩 조용히 후세에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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