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출처 : http://www.asahi.com/paper/column20080626.html
《天声人語》 2008.6.26.
必要になったら「出荷」されるだけ。おれたち、まるでレンタル商品みたいだ。日雇いの派遣労働で食いつなぐ男性(39)の心境が、本紙生活面に載っていた。 働き盛りをそこまで卑屈にさせる商売とは何なのか▼この業界大手のグッドウィルが廃業するという。派遣した先からまた別の会社に回す二重派遣を助けた罪 で、略式起訴された。妙な天引きでも集団提訴されている。「善意」は社名だけらしい▼日雇い派遣に登録すれば、携帯への連絡ひとつで、日々雑多な職場に送 られる。いわば労働力の小口売りだ。二重派遣はその転売にあたる。「無職」の弱みにつけ込み、自在に増減できる労力として使い回す。知識もないまま危険な 現場に送りもする▼休日の小遣い稼ぎという人もいようが、使い捨て同然とあっては、日雇い派遣そのものの禁止論が出るのは当然だ。弱者の無理で成り立つ経 済が、長続きするはずもない▼〈姉(あね)さんかむりで泥にまみれて/日に灼(や)けながら汗を流して/男にまじって綱を引き/天にむかって声あげ て……〉。美輪明宏さんの名曲「ヨイトマケの唄」には、この国を底で支えた風景が描かれる。肉体労働の厳しさ、親への感謝、職業差別への怒り。詞中の 〈僕〉は、母ちゃんの働く姿に多くを学ぶ▼国や経済界も学習し、戦後、汗を安売りさせない仕組みが徐々に整った。ところが、規制緩和と自己責任の名の下、ひどい逆流である。働きがいが〈もひとつおまけにエンヤコラ〉の頑張りを生む。明日をも知れぬ身では、綱を引く手に力が入らない。
"필요해지면 그때그때 ‘출하’되면 그만. 마치 대여상품 취급이다."
한 일용직 파견 노동자(39, 남)의 심경이 본지 생활면에 소개되었다. 도대체 어떤 사업이기에 한창 일해야 할 노동자를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만드는가.
파견업계의 대기업인 굿윌이 폐업한다는 소식이다. 파견된 직장에서 다시 다른 회사로 보내는 이중파견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되고, 파견직의 임금을 빼돌려 집단제소를 당하기도 했다. ‘선의(善意)’라는 건 회사 이름뿐인가.
일용 파견회사에 등록을 하면 휴대전화 연락 한 통으로 매일매일 잡다한 직장에 파견된다. 이른바 ‘노동력의 소량판매’. 이중파견은 그 전형적인 수단이다. 무직자의 약점을 파고들어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노동력으로 써먹는다. 기본지식도 없이 위험한 현장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휴일 용돈벌이삼아 하는 사람은 제외한다 해도, 이렇게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하는데 일용파견 자체를 금지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약자의 희생으로 버티고 있는 경제가 오래 갈 리도 없다.
〈姉(あね)さんかむりで泥にまみれて/日に灼(や)けながら汗を流して/男にまじって綱を引き/天にむかって声あげて……〉
진흙투성이가 된 누나 / 땡볕에 그을어 땀을 흘리며 / 남자들 틈에 섞여 줄을 당기네 / 하늘을 향해 소리치면서
美輪明宏의 명곡 「달구질 노래(ヨイトマケの唄)」는 이 나라를 바닥에서 지탱해 온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고된 육체노동, 부모에게 느끼는 감사, 직업차별에 대한 분노. 노래에 등장하는 ‘나’는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전쟁이 끝난 후 정부와 재계도 교훈을 얻었는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여러 제도와 장치가 서서히 갖추어졌다. 그런데 ‘규제완화’와 ‘자기책임’이라는 명목으로 시대가 완전히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정당한 대가에서 오는 노동의 보람, 그것이 〈기운내서 한번 더 으랏차차(もひとつおまけにエンヤコラ)〉와 같은 열성을 낳는다.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에서 어찌 줄을 당기는 손에 힘이 들어가겠는가.
《天声人語》 2008.6.26.
必要になったら「出荷」されるだけ。おれたち、まるでレンタル商品みたいだ。日雇いの派遣労働で食いつなぐ男性(39)の心境が、本紙生活面に載っていた。 働き盛りをそこまで卑屈にさせる商売とは何なのか▼この業界大手のグッドウィルが廃業するという。派遣した先からまた別の会社に回す二重派遣を助けた罪 で、略式起訴された。妙な天引きでも集団提訴されている。「善意」は社名だけらしい▼日雇い派遣に登録すれば、携帯への連絡ひとつで、日々雑多な職場に送 られる。いわば労働力の小口売りだ。二重派遣はその転売にあたる。「無職」の弱みにつけ込み、自在に増減できる労力として使い回す。知識もないまま危険な 現場に送りもする▼休日の小遣い稼ぎという人もいようが、使い捨て同然とあっては、日雇い派遣そのものの禁止論が出るのは当然だ。弱者の無理で成り立つ経 済が、長続きするはずもない▼〈姉(あね)さんかむりで泥にまみれて/日に灼(や)けながら汗を流して/男にまじって綱を引き/天にむかって声あげ て……〉。美輪明宏さんの名曲「ヨイトマケの唄」には、この国を底で支えた風景が描かれる。肉体労働の厳しさ、親への感謝、職業差別への怒り。詞中の 〈僕〉は、母ちゃんの働く姿に多くを学ぶ▼国や経済界も学習し、戦後、汗を安売りさせない仕組みが徐々に整った。ところが、規制緩和と自己責任の名の下、ひどい逆流である。働きがいが〈もひとつおまけにエンヤコラ〉の頑張りを生む。明日をも知れぬ身では、綱を引く手に力が入らない。
"필요해지면 그때그때 ‘출하’되면 그만. 마치 대여상품 취급이다."
한 일용직 파견 노동자(39, 남)의 심경이 본지 생활면에 소개되었다. 도대체 어떤 사업이기에 한창 일해야 할 노동자를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만드는가.
파견업계의 대기업인 굿윌이 폐업한다는 소식이다. 파견된 직장에서 다시 다른 회사로 보내는 이중파견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되고, 파견직의 임금을 빼돌려 집단제소를 당하기도 했다. ‘선의(善意)’라는 건 회사 이름뿐인가.
일용 파견회사에 등록을 하면 휴대전화 연락 한 통으로 매일매일 잡다한 직장에 파견된다. 이른바 ‘노동력의 소량판매’. 이중파견은 그 전형적인 수단이다. 무직자의 약점을 파고들어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노동력으로 써먹는다. 기본지식도 없이 위험한 현장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휴일 용돈벌이삼아 하는 사람은 제외한다 해도, 이렇게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하는데 일용파견 자체를 금지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약자의 희생으로 버티고 있는 경제가 오래 갈 리도 없다.
〈姉(あね)さんかむりで泥にまみれて/日に灼(や)けながら汗を流して/男にまじって綱を引き/天にむかって声あげて……〉
진흙투성이가 된 누나 / 땡볕에 그을어 땀을 흘리며 / 남자들 틈에 섞여 줄을 당기네 / 하늘을 향해 소리치면서
美輪明宏의 명곡 「달구질 노래(ヨイトマケの唄)」는 이 나라를 바닥에서 지탱해 온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고된 육체노동, 부모에게 느끼는 감사, 직업차별에 대한 분노. 노래에 등장하는 ‘나’는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전쟁이 끝난 후 정부와 재계도 교훈을 얻었는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여러 제도와 장치가 서서히 갖추어졌다. 그런데 ‘규제완화’와 ‘자기책임’이라는 명목으로 시대가 완전히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정당한 대가에서 오는 노동의 보람, 그것이 〈기운내서 한번 더 으랏차차(もひとつおまけにエンヤコラ)〉와 같은 열성을 낳는다.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에서 어찌 줄을 당기는 손에 힘이 들어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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