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은 동인지 『ティロフィナーレ本』에 수록된 평론을 번역한 것입니다. TV 애니메이션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의 주요 스토리와 결말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므로 본편을 시청중이거나 예정인 사람은 감상을 마친 후에 읽을 것을 권장합니다.
2. 본문 내의 작품명 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 방영작 : 『번역한 제목(원어 제목 / 한국판 제목)』 2) 번역한 제목과 한국판 제목이 같거나 한국 미방영 작품 : 『번역한 제목(원어 제목)』 ‘번역한 제목’은 본문 내에서 사용하기 위해 역자가 임의로 번역한 제목을 뜻합니다.
‘장르영화’란 무엇인가. 첫 번째로 강조해야 할 점은, 장르영화는 헐리우드의 대규모 생산시스템에서 태어난 대중소비재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포드나 도요타 공장의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조립되는 대중차와 마찬가지로 생산되고 소비되었다. 좋고 싫고에 관계없이, 헐리우드는 일정한 패턴(‘취향’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하지만)에 기초하여 자사 제품을 만들어내고, 관객은 이를 각각의 패턴 조건에 맞추어 향유하였다. 이러한 반복가능성이 계통적인 대량생산과 소비를 가능케 한다. 그리고 이런 패턴이 존재함으로 인하여 생산자와 소비자는 자신들이 무엇을 팔고 사는지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장르의 생성과 발달은 안정과 확대를 목표로 하는 산업에서는 필연적인 것이다.
『영화장르론 - 헐리우드적 쾌락의 스타일』(加藤幹郎, 平凡社)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魔法少女まどか☆マギカ, 2011, 이하 ‘마마마’)』는 ‘마법소녀물’이 아니다. 이는 각본을 담당한 우로부치 겐(虚淵玄) 역시 명확히 밝히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이번에 『마마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필자는 ‘마법소녀’라는 단어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본 작품을 논하는 과정에서 해당 단어가 수많은 인과를 잇는 특이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자.
마법소녀는 어디에서 왔는가.
교과서적으로 대답하자면 그 기원은 1966년에서 찾을 수 있다. 동년 방영된 『사모님은 마녀(奥様は魔女 / 아내는 요술쟁이)』[각주:1]에서 힌트를 얻은 요코야마 미쓰테루(横山光輝)의 『마법사 샐리(魔法使いサリー / 요술공주 샐리, 이하 ‘샐리’)』[각주:2]가 최초의 ‘소녀 대상 아니메’로서 도에이동화(東映動画, 현 도에이 애니메이션)에서 영상화되었다. 그리고 『샐리』의 히트에 뒤이어 제작된 『비밀의 앗코짱(ひみつのアッコちゃん, 1969, 이하 ‘앗코짱’)』에서는 ‘변신용 소도구(마법 콤팩트)’, ‘동경하는 직업으로 변신’, ‘함께 다니는 마스코트 동물(고양이 싯포나)’ 등 장르의 특징을 결정짓는 요소가 일찍부터 등장하였다.
이후 도에이동화에서는 1980년까지 14년 동안 마법소녀물 아홉 작품을 제작하지만, 그 중에서 ‘마법소녀’를 제목에 사용한 것은 『마법소녀 라라벨(魔法少女ララベル, 1980, 이하 ‘라라벨’)』 하나뿐이다. 타이틀에 ‘마법소녀’를 붙이지 않는 것은 다른 회사 작품들도 마찬가지여서, 1980년대 마법소녀물에 혁신을 가져온 『마법공주 밍키모모(魔法のプリンセスミンキーモモ / 요술공주 밍키, 1982, 이하 ‘밍키’)』부터 『마법아이돌 파스텔 유미(魔法のアイドルパステルユーミ / 꽃나라 요술봉, 1986)』에 이르는 다섯 작품도 ‘마법’은 붙을지언정 ‘마법소녀’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라라벨』이 제목에 ‘마법소녀’를 사용한 것은 이 작품이 전작인 『꽃의 아이 룬룬(花の子ルンルン / 꽃의 천사 루루, 1979)』에 대한 카운터로서, 일본을 무대로 한 서민적인 작품 -다시 말해 세계관에 특이성이 희박한 방향성- 을 목표로 했기에 제목만으로는 그 세계관을 나타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라라벨』은 예외로 하고, 그 다음에 ‘마법소녀’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1996년작 『마법소녀 프리티 사미(魔法少女プリティサミー / 마법천사 루비)』. 그리고 2004년에 『마법소녀대 아루스(魔法少女隊アルス)』와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魔法少女リリカルなのは, 이하 ‘나노하’)』, 2005년에 『사모님은 마법소녀(奥さまは魔法少女)』, 2006년 『사사미☆마법소녀 클럽(砂沙美☆魔法少女クラブ)』으로 이어진다. 참고로 『나노하』의 감독은 잘 알려졌다시피 『마마마』를 감독한 신보 아키유키(新房昭之)이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마법소녀물’이라는 계보에서 살펴보면 하나같이 매우 이질적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패러디를 노리거나, ‘마법소녀’라는 타이틀만 빌리거나, 전통적인 요소를 해체하는 등, 접근법은 제각기 다르지만 ‘더 이상 마법소녀물이라고는 부르기 어려운 작품이 굳이 마법소녀를 내세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로 넘어오면서 마법소녀물은 그 개요를 파악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마법소녀물’의 정통 계보가 『오자마녀 도레미(おジャ魔女どれみ / 꼬마 마법사 레미, 1999)』, 『Cosmic Baton Girl 코메트(Cosmic Baton Girl コメットさん☆ / 별나라 요정 코미, 2001)』로 내려오는 한편, 『미소녀전사 세일러문(美少女戦士セーラームーン / 달의 요정 세일러문, 1992, 이하 ‘세일러문’)』에서 『두 사람은 프리큐어(ふたりはプリキュア, 2004)』로 이어지는 ‘전투미소녀물’이 또 다른 큰 흐름을 이룬다. 그 밖에도 수많은 ‘마법소녀물(파생형으로 ‘아이돌’을 포함한)’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하나하나 독립된 작품이기 때문에 1980년대까지처럼 간결한 계보를 그리기는 어렵다. 이같은 혼란상은 1988년에 『앗코짱』 리메이크판이 성공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이때부터 마법소녀물의 단선적인 역사는 막을 내리고, ‘마법소녀물’이라는 막연하고 거대한 개념과 더불어, 대상이나 방향성에 따라 전략을 달리하는 개별 작품들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따라서 ‘마법소녀물’로서 파격적인 작품이 시청자와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 모호한 위치를 명료하게 나타낼 목적으로 앞장서서 ‘마법소녀’를 내세우는 것이며, 이는 꽤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현대에서 ‘마법소녀’를 내세운다는 건 바로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자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마법소녀를 표방하면서도 마법소녀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게 된 『마마마』는 ‘마법소녀물’의 역사를 돌이켜 보기에 실로 적합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어떤 소원, 그것도 허무맹랑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절실한 소원이 있고, 이를 어떻게든 이루고자 하는 강렬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 있다. 마침내 그는 훌륭하게 자기 소원을 성취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기 발 밑에 존재하고 있는 기반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라는 역설의 존재. 『오이디푸스왕』에서 『인형의 집』까지, 뛰어난 희곡에서 일관되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원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가 곧 드라마이며, 그 원리가 집약되는 지점이 바로 클라이맥스이다.
『드라마와의 대화』(木下順二, 講談社)
그러면 마법소녀물의 역사 끝머리에서 태어난 『마마마』는 이전에 나왔던 마법소녀들과 전혀 관계가 없을까?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변신해서 화려한 전투복을 입게 되는 연출은 『세일러문』 이후 정착된 패턴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그런 외면적인 것이 아니다. 과거의 마법소녀와 『마마마』를 이어주는 것은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며, 그것은 바로 마법소녀가 되는 주인공들의 ‘소망’에 관한 묘사이다.
작중에서 미키 사야카는, 장래가 촉망되는 바이올리니스트였으나 사고를 당해 바이올린을 켤 수 없게 된 소꿉친구 카미죠 쿄오스케를 돕고 싶다는 일념으로,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 수수께끼의 생물 큐베와 계약을 맺는다. 마법소녀가 된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져서, 회복이 절망적이라던 쿄오스케의 손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고 바이올린은 원래 소리를 되찾는다. 이윽고 치료가 진전되어 퇴원을 하고 학교에도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사야카는 소원을 성취했지만, 이로 인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져 버린다. 석양이 비치는 병실에서 단둘이 CD 음악에 귀를 기울이던 은밀하고도 달콤한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쿄오스케를 향한 마음을 사야카에게 밝히는 시즈키 히토미.
소원을 이루려고 하면 오히려 그 소원이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극작가 키노시타 준지(木下順二)는 ‘극적’이라고 표현했는데, 『마마마』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계약으로 인해 극적인 역설 속으로 내던져진다. 그리고 사야카는 그 역설에 휘말려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토모에 마미는 ‘살아남는 것’을 소원으로 빈 결과 목숨을 걸고 마녀와 싸우는 운명에 놓인다(그리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사쿠라 쿄오코는 성직자인 아버지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계약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버지를 불행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마법을 사용하여 (일시적으로) 소원이 이루어졌지만, 사실은 마법을 손에 넣음으로써 꿈은 더욱 멀어져 버린 것이다.
원래 마법소녀물은 아동문학 등에서 말하는 ‘everyday magic(일상생활 속에 판타지스러운 사건이 끼어드는 식의 이야기)’의 한 장르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스타일은 ‘1화 완결’이라는 TV 아니메의 성격과도 잘 맞아서, 많은 마법소녀물은 이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들어 한 가지 변화가 나타나는데, ‘변신 = 성장’이라는 공식이 작품에 도입된 것이다. 그 전에도 『앗코짱』에서 ‘변신 = 되고 싶은 직업이 된다’는 설정은 존재하였지만, 더 나아가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될까?’라는 질문으로 성장이라는 측면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밍키』였다. 그런데 『밍키』는 이같은 ‘everyday magic’의 세계를 ‘주인공의 사고사’를 통해 마무리짓는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본제와 멀어지기 때문에 생략하지만, 『밍키』의 테마는 ‘꿈’이며, ‘성장’은 그 꿈을 이끌기 위한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성장’이라는 개념은 다음해에 방송된 『마법천사 크리미 마미(魔法の天使クリミーマミ / 천사소녀 새롬이, 1983)』에서 ‘연상인 아이돌로 변신’이라는 형태로 계승되며, 여기에 더해 성장하여 결혼한 주인공의 모습으로 작품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85년작 『마법스타 매지컬 에미(魔法のスターマジカルエミ / 요술가족, 이하 ‘에미’)』에서는 ‘성장’이라는 테마가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채용된다. 『에미』는 초등학생인 카즈키 마이가 거울요정 토보에게 ‘소원이 이루어지는 마법’을 받고, 열여섯 살 천재마술사 매지컬 에미가 되어 예능계에서 활약한다는 스토리를 그린다. 이야기 끝부분에서 마이는 자신이 ‘에미’로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종의 기만(欺瞞)이라고 느끼게 된다. 마법의 힘으로 천재마술사가 되었지만 그건 ‘거짓된’ 게 아닐까. 에미 또한 마법을 통해 꿈을 손에 넣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꿈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역설에 빠져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마이는 자기 의지로 마법을 되돌려주고, 서툴지만 자신만의 마술을 선보이려 한다.
꿈을 이루어준다고 하는 마법은, 사실은 자신을 꿈으로부터 갈라놓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설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역설이 드라마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에미』와 『마마마』는 동일선상에 이어져 있다.
『마마마』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크게 방향을 트는 것은 제10화 「이젠 아무도 의지하지 않아」이다. 제10화는 아케미 호무라를 중심인물로 진행되며,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가지 내용이 밝혀지는 에피소드이다. 여기서는 과거에 호무라가 마도카 일행에게 이끌려 마법소녀가 되었고, ‘발푸르기스의 밤’으로 불리는 마녀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한 호무라는 자신에게 깃든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사용하여 마도카와 처음 만난 날까지 시간축을 거슬러 올라가(정확하게는 해당 시점에서 세계의 시간축이 분기하기 때문에 단순한 ‘역행’은 아니지만), 발푸르기스의 밤이 나타날 때까지 약 1개월 동안 마도카가 구원받는 미래를 찾아 수없이 싸움을 반복하게 된다. 물론 호무라 역시 마법소녀의 역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치 않는 미래에 도달할 때마다 동일한 시간을 되풀이했고, 그 결과로 생겨난 평행세계의 인과가 마도카에게 얽혀 그녀에게 최강의 마법소녀이자 최악의 마녀가 될 소질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호무라가 안고 있는 역설이 『마마마』의 클라이맥스를 극적으로 고조시키게 되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다른 세 마법소녀들이 품은 역설과 호무라의 그것은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제10화는 그 전체가 호무라의 회상 -기억 속 이야기- 이다. ‘호무라의 기억’이라 함은, 여기서 밝혀지는 내용은 같은 시간을 무수히 반복했던 호무라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다른 세 마법소녀들이 마법소녀가 된 이유는 다른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나 고백 등을 통해 밝혀지고, 이들은 자기 감정을 다른 인물과 공유한다. 그러나 호무라의 감정은 -시청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는다. 시청자만이 알고 있는 등장인물의 비밀. 이것은 시청자에게 ‘해당 인물의 인생을 함께 지켜보았다’는 생생한 감각을 안겨주고, 시청자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보면 『로마의 휴일』의 마지막, 앤 공주(오드리 헵번 분)와 신문기자 조(그레고리 펙 분)가 기자회견장에서 만나는 장면. 여기서 두 사람이 이미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은 관객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제10화를 본 시청자는 호무라의 비밀을 알고 그녀의 인생에 동참하게 된다. 이는 곧 시청자의 시선을 호무라의 시선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며, 지금까지 베일 속 인물이었던 호무라는 감정이입이 가능한 캐릭터로서 시청자 가슴속에 자리매김한다. ‘마도카를 구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채 기나긴 고독한 싸움을 계속했던 호무라의 마음을 시청자는 비로소 내 일처럼 가깝게 느끼게 된다. 과거 작품들에 나오는 마법소녀들이, 자신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 외에는 밝히지 않았던 것을 떠올려 보자. 여기서 시청자는 마도카 눈높이에서 바라본 제9화까지의 이야기를 한 단계 높은 호무라의 시선에서 다시 고쳐 보고, 이후로는 호무라의 시선을 내재화시켜 마법소녀로, 다시 개념으로 이어지는 마도카의 변화를 지켜보게 된다. ‘루프’라는 아이디어는 ‘호무라와 시청자의 시선을 일체화한다’는 스토리상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교묘하게 사용되었다고 하겠다.
미소녀게임 등에는 루프 설정을 가진 이야기가 존재하며, 제10화에서 그려진 루프를 『게임적 리얼리즘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2(東浩紀, 講談社現代新書)』 등의 보조선으로 해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루프가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포스트모던적인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에 대한 실감을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루프’라는 설정을, 캐릭터의 인생에 시청자를 동참시키고 감정이입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고전적인 장치로서 파악하고자 한다. 이는 자살을 시도하려던 남자가 자신이 없는 또다른 (불행한) 세상을 엿보고 나서(또다른 세상을 엿본 것은 당연히 주인공과 관객뿐이다) 현세로 돌아온다는 『멋진 인생』과 같은 종류로 보아도 되겠다. 작품 내용을 이런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마마마』는 ‘최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전적’인 작품이다.
마녀와 싸운다는 게 어떤 건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런 다음에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이루고 싶은 소원이 정말로 있는지 차분히 생각해 보렴.
-토모에 마미-
제1화 「꿈 속에서 만난 것 같은…」은 꿈 속에서 마도카가 호무라와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해당 장면이 상징하듯이 마도카라는 소녀는 ‘보는’ 캐릭터이다. 마도카는 우선 ‘방관’한다. 친구인 사야카가 마법소녀가 되어도, 선배인 마미를 동경하면서도, 마도카는 좀처럼 큐베와 계약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소녀로서 다른 마법소녀들의 싸움을 지켜볼 뿐이다. 어째서 마도카가 방관할 수밖에 없는가. 그 이유는 그녀에게 마법소녀가 되어야 할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제2화 「그러면 정말로 기쁠 거야」에서 선배인 토모에 마미를 따라 마법소녀를 체험하러 나설 때, 마도카는 자신이 마법소녀가 되었을 때 입을 복장을 그림으로 그려서 가져온다. 동기가 없는 그녀는 마법소녀를 이해하기 위해 그렇게 외면(外面)에서 다가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기동전사 건담(機動戦士ガンダム, 이하 ‘건담’)』 제41화 「빛나는 우주」에서 주인공 아무로 레이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까지 싸울 수 있나요? 지켜야 할 사람도 물건도 없으면서.
-나한테는 보여요. 당신 안에는 가족도 고향도 없는데.
이 질문을 한 것은 초감각을 가진 ‘뉴타입’이라고 불리는 소녀 라라아 슨. 그녀와 만나면서 급격하게 뉴타입으로 각성하게 된 아무로는 의식 속에서 라라아와 대화를 나누고, 싸우기 위한 ‘동기’가 없음을 지적받는다. 아무로는 양친과 모두 결별하고, 어디에도 돌아갈 곳이 없는 부평초같은 신세이다. 그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눈앞에 닥쳐오는 온갖 위협을 떨쳐내며 끊임없이 싸웠고, 결국 전쟁의 수렁 한가운데로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뉴타입으로 각성함으로써 최강의 전사로 ‘성장’한다. 라라아가 따진 것은 ‘동기를 갖지 않은 평범한 소년’과 ‘최강의 전사’가 공존하고 있다는 모순이다. 마도카 자신도 ‘동기를 갖지 않은 평범한 소녀’이며, 동시에 ‘최강의 마법소녀(마녀)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마도카는 아무로와 같은 이중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아무로의 경우, ‘최강의 전사’ 이야기는 SF로서 정리되고, ‘평범한 소년’ 이야기는 성장소설[각주:4]로 풀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이야기가 한데 엮인 것이 『건담』이라는 작품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최강의 전사’편은 제41화 「빛나는 우주」에서 라라아와 함께 미래의 환상을 보는 부분이 클라이맥스가 되고, ‘평범한 소년’편은 최종화 「탈출」에서 뉴타입 능력을 사용하여 동료들을 전화(戰火)로부터 구출하고 그들 곁으로 돌아감으로써 완결된다.
-미안. 아직 나한테는 돌아갈 곳이 있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거야. 이해해 주는 거지? 라라아하고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
동료들에게 돌아가면서 아무로가 독백하는 이 대사가, 제41화에서 ‘지켜야 할 것이 없다’는 라라아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는 점은 좀 더 주목받아도 될 것이다. 『건담』과 동일하게 생각해 보면 『마마마』 또한 ‘평범한 소녀’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과 ‘(최강의) 마법소녀’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각자 존재하게 된다. 마법소녀물을 읽기 위한 보조선을 로봇아니메로부터 긋는다고 하면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법소녀물과 로봇아니메 모두 ‘주인공이 자기 능력 이상의 힘을 손에 넣고 사회(아이들은 끼어들 수 없는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는 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everyday magic’풍의 1화 완결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면서, 1980년을 전후로 이야기 안에 ‘성장’을 집어넣음으로써 장르 내에서 표현 가능한 영역을 심화시켰다는 경위도 비슷하다.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로봇아니메는 또다른 마법소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도카의 경우, ‘평범한 소녀 이야기’의 최종화는 제11화 「마지막 남은 길잡이」가 된다. 마도카는 홀로 발푸르기스의 밤과 싸우고 있는 호무라를 구하기 위해 온가족이 피난해 있던 대피소를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그때 마도카의 어머니 준코가 그녀를 붙잡는다. 구체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오직 호무라 곁으로 달려가고자 하는 마도카.
-엄마는 ‘내가 착한 아이로 자라 줬다’고 했죠? 거짓말도 안 하고 나쁜 짓도 안 한다고. 지금도 그렇게 믿어요?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세요?
이 말을 들은 준코는 대답한다.
-절대로 허튼 짓 하는 거 아니지? 나쁜 녀석한테 속고 있는 건 아니지?
고개를 끄덕여 답하는 마도카. 여기서 마도카의 대답은, 정확하게 말하면 ‘거짓말’이다. 자칫 잘못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큐베의 거짓말에 놀아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마도카는 ‘응’이라고 대답한다. 지금까지 ‘방관자’였던 소녀 마도카는 이때 비로소 동기를 가슴에 품은 주체적인 존재로 변모하며, 이는 곧 ‘성장’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 ‘성장’은 결코 부모와의 단순한 결별이나 배반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마법소녀가 된 마도카의 행동에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종화에서 마미는 마법소녀가 되고자 하는 마도카의 소원을 듣고 "희망을 이루는 게 아니야. 너 자신이 ‘희망’이 되는 거지."라며 격려한다. 이것은 준코의 삶에 관해 아빠가 이야기해 준 ‘삶의 방식 그 자체를 꿈으로 삼는다’는 내용과 호응한다. 그리고 마도카가 망가져 가는 사야카를 걱정해서 상담을 청했을 때, 준코는 ‘지나치게 올곧은 그 아이 몫까지 누군가가 잘못을 해 주면 된다’고 조언한다. 이 말은 사야카에게는 적절히 쓰이지 못했지만, 나중에 호무라를 구하기 위해 호무라가 원하지 않는 ‘마법소녀가 된다’는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실천된다. 마도카가 마법소녀가 되는 동기는 친구 마법소녀들의 죽음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후회와 호무라를 향한 우정에 바탕을 두지만, 그 동기를 실천하기 위한 ‘윤리’는 준코에게서 이어받은 것이었다. 이는 제1화부터 준코가 워킹우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거나, 은근슬쩍 마도카를 신경써 주는 묘사를 차곡차곡 쌓아놓았기에 설득력이 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소중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부모를 저버린다. 그야말로 ‘성장’ 이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부를 수 없는 행동이다.
아무로는 동기를 자각하기 한참 전부터 ‘건담’이라는 힘을 우연히 손에 넣어 싸울 수밖에 없었고, 싸우는 와중에 자신이 싸우는 동기를 찾아야 했다. 에미 또한 자각하지 못한 채 마법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마법을 쓰면서도 정말로 자신에게 마법이 필요한지 고뇌해야만 했다. 마도카는 자기 안에 있는 ‘동기’를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마법소녀’가 될 결심을 한다. 방향은 저마다 다르지만 세 캐릭터는 하나같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깨닫고, 그에 맞추어 다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마도카는 그녀가 마법소녀이기 때문에, 1980년을 전후하여 아니메에서 적극적으로 제재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성장이야기’의 계보상에 위치하게 된 캐릭터이다.
그렇게 볼 때 『마마마』는 정통적인 성장이야기이기도 하다. 제11화까지는.
이 나라에서는 성장 도중인 여성을 ‘소녀’라고 부른다며? 그렇다면 언젠가 마녀가 될 너희들은 ‘마법소녀’라고 불러야겠지.
-큐베-
『건담』의 작품 구성에서 특징적인 것은 ‘아무로가 인간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영향을 준 수많은 적·아군 캐릭터들의 존재가, 실은 아무로가 뉴타입으로 각성하도록 인도하기 위한 묘사이기도 했다’는 연출이다. 왜 아무로는 인간적인 성장에 그치지 않고 뉴타입까지 되어야 하는가. ‘전쟁’이라는 은유를 도입한 로봇아니메를 결말짓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드라마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어떤 형태로든 제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로는 라라아와 교감하면서 추상적인 비전을 보고 인류의 앞날을 느낀다. 이렇게 하여 ‘뉴타입이라 불리는 최강의 전사 이야기’는 SF적인 전망을 제시하며 마무리된다.
『마마마』 제12화 「최고의 내 친구」 A파트에서 펼쳐지는 것은 아무로·라라아가 교감하는 장면과 같은 종류의 시각적 볼거리이다. 마도카는 ‘과거-현재-미래-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마녀를 태어나기 전에 자기 손으로 없애버리는 것’을 소원으로 빌고, 그에 따라 우주의 규칙 자체를 새로 쓰게 된다. 이것은 제11화 준코와의 대화장면에서 응축되어 그려진 ‘성장’과는 관계가 없으며, 해당 부분의 묘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각주:5]가 된 마도카가 압도적인 힘으로 세계를 바꾸어 나가는 모습에 역점이 놓여 있다.
마도카는 ‘옆얼굴’을 보이는 캐릭터였다. 무대극과 같은 횡적 구도를 자주 사용하고 등장인물을 위아래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은 본작에는 여러 캐릭터의 옆모습 컷이 자주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마도카의 옆얼굴은 인상적인데, 오프닝에서 그녀가 옆모습을 보인 채 화면을 달려나가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호무라의 캐릭터가 정면을 향한 채 화면 앞쪽으로 걸어오는 장면으로 상징되듯이, 마도카의 걱정스러운 ‘옆얼굴’ 또한 ‘방관자’인 그녀를 상징하는 것이 인상에 남았다. 그러다가 제12화가 되면 옆모습보다 정면모습이 더 강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단순히 정면얼굴 컷이 늘었다는 정량적인 문제를 넘어 ‘보는’ 캐릭터인 마도카의 내면이 ‘방관’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능동적인 변화를 이루었고, 그 결과로 인상까지 바뀐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디에나 있는 존재가 되어, 마법소녀를 지켜보는 ‘개념’으로 화한 마도카. 그 시선은 그녀가 사용하는 활과 화살처럼 늘 ‘당신’을 꿰뚫는 것이어야 한다. 제12화의 마도카는 그러한 시선의 근원으로서 화면 속에 존재한다. 1969년에 시작되어 45년이 지나는 동안, ‘마법소녀물’은 ‘마법소녀물’이라는 장르의 틀을 비집고 나올 만큼 넓게 확산되었지만, 거기에는 역시 ‘마법소녀물’의 확실한 DNA가 무의식중에 섞여 있다. 이렇게 섞여든 DNA가 바로 시대가 흘러도 대중오락이 변함없이 강인함을 보여주는 이유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마마마』 안의 ‘마법소녀 DNA’는 다시 새로운 DNA와 섞이며 계속해서 아니메 세계, 픽션 세계로 영원히 퍼져나가리라.
이렇게 영원히 뻗어나가는 ‘아니메’라는 나무의 어느 가지에, 2011년에 탐스럽게 열린 과실 한 덩이가 바로 『마마마』이다. 장대한 연쇄 속에서 태어난 지금까지의 마법소녀들과 앞으로 태어날 마법소녀들. 마도카를 비롯한 그네들에게 영원한 꽃다발을.
奥さまは魔女(원제 : Bewitched)
마녀와 결혼한 주인공과 주변 일상을 다룬 미국의 TV 드라마. 1964~1972년까지 ABC에서 전 254화 방영.
큰 인기를 얻어 장기 시리즈가 되었고, 일본에서도 1966년부터 일본어 더빙판으로 방영. 미국과 마찬가지로 크게 히트하여 여러 번 재방송되었으며, 『마법사 샐리』를 필두로 한 ‘마법소녀물’ 장르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본문으로]
魔法使いサリー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만화 및 이를 원작으로 한 아니메 작품. 마법나라에서 인간계로 찾아온 소녀 샐리와,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주변인물들이 펼치는 사랑과 우정이야기를 그린다.
원작은 1966~1967년에 만화잡지 「리본」에 연재되었으며, 연재 당시 제목은 『마법사 서니』. 아니메 제작 당시 ‘서니’의 상표권을 가진 가전업체 소니에게서 사용허가를 받지 못해 아니메와 단행본 제목은 ‘샐리’로 변경되었다.
일본에서 최초로 방영된 소녀 대상 아니메이며, 도에이동화(현 도에이 애니메이션)에서 제작된 마법소녀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素晴らしき哉、人生!(원제 : It's a Wonderful Life)
1946년 제작된 미국 영화. 프랭크 카프라(Frank Russell Capra) 감독.
부친의 급사로 인해 원래 꿈을 접고 가업을 잇게 된 조지 베일리는 마을 제일의 부자인 포터에게서 갖은 압력을 받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성실한 나날을 보낸다. 고생 끝에 행복이 찾아오는 듯했으나 불행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절망한 나머지 크리스마스날 밤에 자살을 시도하려던 그에게 천사가 나타난다. 천사는 ‘태어나지 않는 게 좋았다’고 말하는 조지에게 그가 태어나지 않았던 또다른 세계를 보여주며, 조지가 얼마나 훌륭한 인생을 살았는지 가르쳐 준다.
개봉한 이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TV로 방영되며 불후의 명작으로 칭송받았고, 세대를 초월하여 널리 사랑받는 작품. [본문으로]
[독] Bildungsroman
교양 소설. 주인공의 인간적인 성장을 테마로 한 소설. [본문으로]
[라틴] deus ex machina
직역하면 ‘기계로 만들어진 신’. 원래는 고대 그리스 문학이나 연극에서 쓰인 무대 기법으로, 작품의 절정 또는 결말부에 신이나 초자연현상 등의 절대적인 존재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끝내버리는 행위. 또는 그러한 연출에 사용된 소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