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속 세상2009. 5. 29. 00:17
컴 새로 장만한 김에 방 안을 뒤져 예전 부품들도 싸악 정리중. 박스들을 끄적거리다가 이런 게 나왔다.


혹시라도 '이게 뭥미??'라는 친구들을 위해 초간단 설명.
USB나 CD 이전, DOS 시절에 보조기억장치로 가장 널리 쓰이던 디스켓이다. '디스켓(Diskette)'이란 데이터를 기록하는 동그란 플로피 디스크와, 디스크를 보호하는 네모난 플라스틱 자켓을 합쳐서 만든 단어. 쪼만한 녀석이 3.5인치, 큰 녀석이 5.25인치. 보통 10장 들이로 저렇게 한 박스에 담겨 나오고, 낱장으로도 판매했음.
중·고등학교때 시세가... 대략 한 박스에 만원대 중반 오락가락? 5.25인치보단 용량 더 많고 껍데기 튼튼한 3.5인치가 좀 더 비쌌다. 3M 제품이 제일 인기였고, 국산품으로는 SKC가 나름 선전했던 기억이.

대부분 컴 하나에 5.25”짜리를 A, 3.5”짜리를 B드라이브로 놓고 쓰다가, 컴이 빨라지고 하드 용량이 커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5.25” 디스켓과 드라이브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3.5”는 얼마간 더 버티나 싶더니만, 그나마도 USB가 퍼지면서 소리소문 없이 퇴장...

기억 용량은
HD : 포맷후 1.44MB(3.5”) / 1.2MB(5.25”)
DD : 포맷후 720KB(3.5”) / 360KB(5.25”)

1MB 겨우 넘어가는 플라스틱 판때기로 도대체 뭘 할 수 있냐고? XT/AT~386 시절엔 저거 한 장이면 못 할 게 없었지. config.sys 매만져서 멀티부팅으로 DOS/V 돌리고, PC통신 갈무리해서 장편 야설... 소설 꽈악 채워넣고, 감자배구나 고인돌같은 게임은 압축할 필요도 없이 서너 개씩 집어넣어 실습실 가서 두들기고.
컴에 20MB 하드디스크가 달려있으면 부르조아 취급을 받던 때에
디스켓 보유량 = 정보량 = 컴 능숙도 = 인맥 범위 = 교실 내 인기도
였다. 최신게임 나왔다는 소문 들리면 디스켓 많이 가진 녀석 주변 자리는 한동안 발디딜 틈이 없을 지경.

플라스틱 자켓에 금속커버가 달린 3.5”짜리와 달리, 5.25” 디스켓은 껍데기 재질도 약한데다 데이터 읽는 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서, 사용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종이팬티를 입혀 두어야 했다. 보관에 잔손이 더 가고 신경이 쓰였던 만큼, 튼튼하다고 험하게 다룬 3.5” 디스켓보다 오히려 수명이 긴 경우가 많았다.

사용시에 헤드와 디스크가 직접 접촉하는 방식이다 보니, 아무리 깨끗하게 쓰고 관리를 잘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배드섹터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디스켓 한 박스(+ a)를 동원해서 덩치 큰 녀석(X윙이라든가, 킹스 퀘스트라든가, 울티마라든가...)을 분할압축해서 담아왔는데, 한참 압축 풀다가 마지막 장에서 배드섹터 뜨고 CRC 에러 나면 억장이 와르르르.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기가 단위로 파일을 휙휙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이럴 땐 월말에 전화요금 청구서가 나오면 가출할 각오를 하고 새벽에 몰래 PC통신에 접속하거나, 갖은 인맥과 친분을 동원해 소스(?)에게 접근해 아양을 떠는 수밖에 없었다. orz
에러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새 디스켓을 쓰는 것!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시에는 갓 포장 뜯은 녀석도 포맷하다가 심심치 않게 배드섹터가 뜨던 시절. 디스켓 수십 장을 그렇게 희생시키고 나서, 결국은 하드 뽑아들고 다니기 신공을 남들보다 한참 앞서 터득하게 되었다. -┏


처분하기 전 마지막으로 찰칵.

드라이브에 부팅 디스켓을 밀어넣고 까만 DOS화면이 투닥투닥 뜨는 걸 지켜보던 때가...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군.
블루레이니 차세대 통신이니 하는 때에 이런 골동품을 만지작대고 있으려니, 무슨 타임캡슐이라도 열어보는 기분이다.
몇 년이 지나면 DVD나 HDD를 꺼내놓고 또 이런 글을 끄적이게 될까? -_-)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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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RPE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