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출처 : http://www.asahi.com/paper/column20120311.html
《天声人語》 2012.3.11.
もう1年なのか、まだ1年なのかを問われれば、もう1年が過ぎた、の感が強い。震える思いであの日、〈テレビ画面を正視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本欄を書き出したのは昨日のことのようでもある▼それは、どす黒い海水が仙台平野にのしかかっていく上空映像の衝撃だった。1年をへて、その宮城県名取市を訪ねた。人影のない閖上(ゆりあげ)中学校の時計は2時46分で止まっていた。漁船が3隻、校庭に転がったままだ。生徒14人が亡くなったことを記す碑が新しくできていた▼高さ約8メートル、土を盛ったような日和(ひより)山に登ると、消えた街の広さがわかる。卒塔婆(そとば)を拝んでいた中年の女性は「ここで暮らしたなんて、遠い昔のよう」と言った。止まったままの時と、過ぎに過ぎる日々が、被災の地に混在している▼被災地ばかりでなく日本全体にとって、「3・11以前」はもはや戻れぬ対岸になってしまった。振り向けば橋は消えて、隔てる川の流れは深い。だれもが心細い肩を寄せ合いながら、「絆」という焚(た)き火に心の手をかざしてきた1年だったように思う▼その「絆」の文字も過剰な使用に摩耗気味だ。井上ひさしさんが健在なら「つるつる言葉」と呼ぶかもしれない。便利に使われすぎて意味も実体もすり減ってしまう言葉を、そう称していた▼スローガンで何が片づくわけでもない。だが私たちの社会がこれほど他者を思ったのも、史上まれなことではなかったか。ともに悲しみ、「絆」の一語に魂を入れ直すこの日としたい。
'벌써 1년'인지 '이제 겨우 1년'인지를 묻는다면, '벌써 1년이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다. 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TV 화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고 본 칼럼을 써내려가던 그날의 기억이 엊그제처럼 선하다. 그때 TV화면에 비친 것은, 시커먼 바닷물이 센다이(仙台) 평야로 밀어닥치는 충격적인 항공영상이었다.
1년이 지난 후, 당시 현장인 미야기(宮城)현 나토리(名取)시를 찾았다. 인적이 없는 유리아게(閖上)중학교, 교실 시계는 2시 46분에서 멎은 채였다. 어선 세 척이 교정에 나뒹굴고 있었다. '학생 1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적힌 비석이 새로 세워져 있었다.
높이 약 8m, 흙더미를 쌓아올린 듯 야트막한 히요리(日和)산에 오르자 사라져 버린 마을 크기가 실감이 난다. 공양비 앞에서 기도를 올리던 중년 여성은 "여기서 살았던 시절이 먼 옛날이야기같다"고 말했다. 멈춰버린 시간과 하릴없이 흘러가는 나날이 그곳에는 여전히 뒤섞여 있다.
재난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를 통해 '3·11 이전'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강 건너편이 되어버렸다. 돌아보면 다리는 이미 사라졌고, 양쪽 기슭을 갈라놓은 강은 깊고 거칠다. 모두가 불안에 떨며 어깨를 맞대고, '유대(絆)'라는 모닥불에 마음을 쬐며 견뎌온 지난 1년이었다.
그 '유대'라는 글자도 지나치게 많이 쓰인 탓인지 이젠 식상한 느낌이다. 이노우에 히사시(역주1)가 건재했다면 '자갈말'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편한 대로 분별없이 쓰인 나머지 의미도 실체도 닳아버린 단어를 그는 이렇게 부르곤 했다.
거창한 구호를 내세운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나 타인을 생각했던 것도 역사상 드문 경험이 아니었을까. 함께 슬픔을 나누며 '유대(絆)'라는 한 글자에 다시 혼을 불어넣는 오늘이 되었으면 한다.
역주1 - 井上ひさし(1934~2010)
일본의 소설가, 극작가, 방송작가.
뛰어난 언어감각과 방대한 어학지식을 바탕으로 소설, 희곡, 수필 등을 다수 발표.
《天声人語》 2012.3.11.
もう1年なのか、まだ1年なのかを問われれば、もう1年が過ぎた、の感が強い。震える思いであの日、〈テレビ画面を正視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本欄を書き出したのは昨日のことのようでもある▼それは、どす黒い海水が仙台平野にのしかかっていく上空映像の衝撃だった。1年をへて、その宮城県名取市を訪ねた。人影のない閖上(ゆりあげ)中学校の時計は2時46分で止まっていた。漁船が3隻、校庭に転がったままだ。生徒14人が亡くなったことを記す碑が新しくできていた▼高さ約8メートル、土を盛ったような日和(ひより)山に登ると、消えた街の広さがわかる。卒塔婆(そとば)を拝んでいた中年の女性は「ここで暮らしたなんて、遠い昔のよう」と言った。止まったままの時と、過ぎに過ぎる日々が、被災の地に混在している▼被災地ばかりでなく日本全体にとって、「3・11以前」はもはや戻れぬ対岸になってしまった。振り向けば橋は消えて、隔てる川の流れは深い。だれもが心細い肩を寄せ合いながら、「絆」という焚(た)き火に心の手をかざしてきた1年だったように思う▼その「絆」の文字も過剰な使用に摩耗気味だ。井上ひさしさんが健在なら「つるつる言葉」と呼ぶかもしれない。便利に使われすぎて意味も実体もすり減ってしまう言葉を、そう称していた▼スローガンで何が片づくわけでもない。だが私たちの社会がこれほど他者を思ったのも、史上まれなことではなかったか。ともに悲しみ、「絆」の一語に魂を入れ直すこの日としたい。
'벌써 1년'인지 '이제 겨우 1년'인지를 묻는다면, '벌써 1년이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다. 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TV 화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고 본 칼럼을 써내려가던 그날의 기억이 엊그제처럼 선하다. 그때 TV화면에 비친 것은, 시커먼 바닷물이 센다이(仙台) 평야로 밀어닥치는 충격적인 항공영상이었다.
1년이 지난 후, 당시 현장인 미야기(宮城)현 나토리(名取)시를 찾았다. 인적이 없는 유리아게(閖上)중학교, 교실 시계는 2시 46분에서 멎은 채였다. 어선 세 척이 교정에 나뒹굴고 있었다. '학생 1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적힌 비석이 새로 세워져 있었다.
높이 약 8m, 흙더미를 쌓아올린 듯 야트막한 히요리(日和)산에 오르자 사라져 버린 마을 크기가 실감이 난다. 공양비 앞에서 기도를 올리던 중년 여성은 "여기서 살았던 시절이 먼 옛날이야기같다"고 말했다. 멈춰버린 시간과 하릴없이 흘러가는 나날이 그곳에는 여전히 뒤섞여 있다.
재난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를 통해 '3·11 이전'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강 건너편이 되어버렸다. 돌아보면 다리는 이미 사라졌고, 양쪽 기슭을 갈라놓은 강은 깊고 거칠다. 모두가 불안에 떨며 어깨를 맞대고, '유대(絆)'라는 모닥불에 마음을 쬐며 견뎌온 지난 1년이었다.
그 '유대'라는 글자도 지나치게 많이 쓰인 탓인지 이젠 식상한 느낌이다. 이노우에 히사시(역주1)가 건재했다면 '자갈말'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편한 대로 분별없이 쓰인 나머지 의미도 실체도 닳아버린 단어를 그는 이렇게 부르곤 했다.
거창한 구호를 내세운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나 타인을 생각했던 것도 역사상 드문 경험이 아니었을까. 함께 슬픔을 나누며 '유대(絆)'라는 한 글자에 다시 혼을 불어넣는 오늘이 되었으면 한다.
역주1 - 井上ひさし(1934~2010)
일본의 소설가, 극작가, 방송작가.
뛰어난 언어감각과 방대한 어학지식을 바탕으로 소설, 희곡, 수필 등을 다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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