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아사히신문2009. 8. 17. 18:21
원문 출처 : http://www.asahi.com/paper/editorial20090815.html


あの戦争の記憶―世代を超え、橋を架ける
전쟁의 기억 - 세대를 넘어 다리를 놓는다

64回目の終戦記念日を迎えた。
驚かされる数字がある。被爆地にある長崎総合科学大学の平和文化研究所が、同大の学生を対象に行った昨年の調査で、「終戦の日」がいつかを正しく答えられたのは33.2%。15年ほど前は5~6割台だった。
戦後生まれは人口の4分の3を超えた。太平洋戦争の戦場から帰還し、健在な人は推計で40万人前後。最後となった1945年の徴兵検査を19歳で受けた人が、もう83歳だ。
あの戦争の記憶をどう受け継いでゆくか。年々難しくなる課題に私たちは直面している。

■当事者に向き合う
さいたま市の英会話学校で働く神(じん)直子さん(31)は、学生時代にスタディーツアーでフィリピンを訪ねた。現地の集会で、一人のおばあさんに「日本人なんか見たくない」と言われたことが胸に突き刺さった。日本兵に夫を殺されたという。
その3年後に知人から偶然、戦地での行いを悔いながら亡くなった元日本兵がいる、と聞かされた。フィリピンで従軍した人の今の思いをビデオメッセージにして、現地の人に届けてはどうか。そう思いついた。
旧日本軍の部隊名簿などを手がかりに数百通の手紙を出してみた。ぽつりぽつりと返事が来た。神さんはカメラを手に、全国を訪ね始める。
「お国のために何でもやる。そんな教育に従って生きてしまった気がする」と、振り返った元兵長がいた。
「強盗、強姦(ごうかん)、殺人、放火……。軍命とはいえ、罪の気持ちはある。でも謝るすべを知りません」。工兵隊にいた人は声を絞りだした。
話の最後に「無我夢中でゲリラを突き刺した」と、打ち明けた人もいた。
フィリピンは太平洋戦争の激戦地だ。日米両軍の死闘のなかで、日本の軍人・軍属60万人中50万人が死亡した。フィリピン人も100万人以上が犠牲となった。
証言の映像を持参したフィリピンでは、元兵士が葛藤(かっとう)を持ち続けていることに驚いた人が多かった。みなではないけれど、許すと言う人もいた。
神さんにとって戦争の歴史は、モヤモヤとよどんでいる、という。
教科書の記述や靖国参拝を中国や韓国から批判されると、国内から反発が起きる。海外に行くと、唐突に過去を突きつけられる。でも学校ではろくに近現代史を学んでいない。広島の被爆体験を描いた「はだしのゲン」は読んだことはあるが、海外に出兵した日本人のイメージは具体的に浮かばない。
あの時代に近づき、戦争に携わった当事者に向き合わなければ、モヤモヤを埋めて先へと進めない――。
神さんは「ブリッジ・フォー・ピース」という団体を立ち上げた。若者たちが手分けして70人近い元兵士の話を聞いた。フィリピンの市民団体などの協力で、毎年のように上映会を開く。

■語り始めた元兵士
東京都中野区の安田誠さん(86)は航空通信兵だった。フィリピンから復員後、薬の輸入商社で働き、子会社の社長まで務めて引退した。
2等兵の経験談など、だれも耳を傾けまいと思ってきた。だが、気がつけば、外国に対し勇ましいことを言う空気が世にあふれている。戦地の悲惨さを、若い者は知らんのだろうか。
孫に2年前、戦争を語る集会に連れて行かれたのが契機になった。請われるまま公民館などで話す。散歩中に同年配者を見かけては、仲間に誘う。
元兵士たちの体験を、共有できる形にして残そうという試みもある。
東京都北区の民家に先月、小さな史料館が開館した。20~30代のボランティアらでつくる「戦場体験放映保存の会」が、4年前から聞き取りを進めてきた。証言映像のDVDと手記類を合わせ、まず2200人分を公開する。
「国民的な記憶だったはずの従軍体験を、できるだけ残すことが、戦争を知らない孫たちの世代の使命。あと5年、いや3年が勝負です」と、同会事務局長の中田順子さん(35)は言う。
元兵士が仲間に呼びかける形で、証言の輪は広がっている。合言葉は「戦友(とも)よ、語ってから死のう」。安田さんもその一人に加わった。

■体験者なき戦後へ
NHKが進めるプロジェクト「戦争証言アーカイブス」では、従軍経験を語る映像がウェブ上で閲覧できる。10月までの試行で約100人分。銃後の経験を含めた証言をもっと増やし、11年には本格サイトを完成させる。
番組制作で集めたインタビューを未放送分も含めて収録し、戦場名や年表からの検索も可能にした。日本人の戦争体験全体を、体系的・総合的に整理するねらいだという。
社会の中で薄れてゆく記憶を、つくりなおす。世代を超えて橋を架ける作業がいくつも進められている。
ごく普通の人が、国の誤った道に巻き込まれ、極限の状況下で、加害者にも被害者にもなる。無名の元兵士たちが若者に語り残すのは、そうした戦争のリアリティーだ。その集積を、日本が二度と過ちを繰り返さないための共有財産にしてゆこう。
戦場の現実を踏まえない議論を、政治の場で横行させてはならない。
遠くない将来、あの戦争の体験者はいなくなる。それからも、私たちは「戦後」の時間を刻み続けていく。

8월 15일, 오늘로 64년째 종전기념일을 맞이했다.
여기 놀라운 숫자가 있다. 당시 피폭지인 나가사키 종합과학대학의 평화문화연구소가 작년에 동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전쟁이 끝난 날'이 언제인지 정확히 답한 비율은 고작 33.2%. 15년 전에는 50~60%대였다.
전후(戦後)에 출생한 인구가 전체의 3/4을 넘었다. 태평양전쟁에서 귀환하여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인구는 40만 명 안팎으로 추산. 전쟁 마지막 해인 1945년에 19세로 징병검사를 받은 사람이 이제는 83세가 되었다.
그 전쟁의 기억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과제에 우리들은 직면하고 있다.

■당사자들을 마주보고
사이타마시의 영어회화학원에서 일하는 神直子씨(31)는 학생시절 해외연수로 필리핀에 간 적이 있다. 현지 집회에서, 남편이 일본군에게 살해당했다는 할머니에게 들은 '일본인 따위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3년 후,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전쟁터에서 저지른 행위를 후회하며 세상을 떠난 구 일본군 병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리핀에서 종군했던 병사들이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비디오 메시지로 만들어서 현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옛 일본군 부대명부 등을 실마리로 삼아 편지 수백 통을 보냈다. 이윽고 뜨문뜨문 답장이 왔다. 神씨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한다. 그렇게 배운 대로만 살아온 것 같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병장(당시)이 있었다.
'강도, 강간, 살인, 방화… 아무리 군 명령이라지만, 죄의식은 분명히 있었지. 하지만 이젠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 공병대에 있던 한 노인은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정신없이 게릴라를 베고 찔렀다'고 털어놓은 사람도 있었다.
필리핀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격전지이다. 일본·미국 양측이 사투를 벌여 일본측 군인·군속 60만명 가운데 50만명이 사망했다. 그 와중에 필리핀인도 100만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증언 영상을 가지고 찾아간 필리핀에서는, 당시 병사들이 지금까지도 갈등과 고뇌를 겪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이제 그만 용서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神씨는 전쟁의 역사가 '자욱하게 고여 있다'고 말한다.
교과서 기술이나 야스쿠니 참배로 중국이나 한국에게 비난을 받으면, 국내에서는 반발이 일어난다. 해외에 나가 보면 느닷없이 과거 이야기를 들이미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제대로 근현대사를 배운 적이 없다. 히로시마 피폭 체험을 그린 「맨발의 겐(はだしのゲン)」을 읽어 본 적은 있지만, 해외에 출병한 일본인의 이미지는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 시절로 다가가서, 전쟁을 직접 겪은 당사자와 마주하지 않으면, 자욱한 역사를 묻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神씨는 'Bridge of Peace'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젊은이들이 조를 나누어 70명 가까운 옛 병사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필리핀 시민단체 등과 협력하여 해마다 상영회를 개최하고 있다.

■말문을 연 노병사
도쿄도 나카노구에 사는 安田誠씨(86)는 항공통신병이었다. 필리핀에서 돌아와 약품 수입상사에서 일하며 자회사 사장까지 지낸 후 은퇴했다.
'이등병의 전쟁 경험담 따위 누가 들어 주겠나'라고 지금껏 생각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외국에 대해 거침없는 소리를 쏟아내는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이들은 모른단 말인가.
2년 전, 손자에게 이끌려 전쟁을 말하는 집회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요청을 받을 때마다 시민회관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산책하던 중에 동년배를 만나면 같이 강연을 하자고 권유한다.
옛 병사들의 체험을 공유 가능한 형태로 남겨 두려는 시도도 있다.
지난 달, 도쿄도 키타구의 민가에 작은 사료관이 문을 열었다. 20~30대 자원봉사자들이 조직한 '전장체험 방영보존회'가 4년 전부터 청취작업을 진행하였다. 증언 영상 DVD와 수기 등을 모아, 우선 2200명분을 공개했다.
'전 국민의 기억이었던 종군체험을 최대한 많이 남겨 놓는 것이, 전쟁을 모르는 손자 세대의 사명이지요. 앞으로 5년, 아니 3년이 승부입니다'라고,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中田順子씨(35)는 말한다.
참전 병사들이 당시의 동료들에게 호소하는 형태로, 증언은 점점 그 폭을 넓혀 가고 있다. 암호는 '전우여, 죽기 전에 말하세.' 安田씨도 여기에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체험자가 사라진 전후세대로
NHK가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전쟁 증언 자료실'에서는, 종군 경험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오는 10월까지 시험 단계로 100명분을 수집하고, 후방의 경험까지 포함하여 증언을 더욱 늘려서, 2011년에는 본격적인 사이트를 완성시킬 예정이다.
프로그램 제작시 수집한 인터뷰를 미방영분까지 더해 수록하고, 전장명이나 연표로도 검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본인의 전쟁 체험 전체를 체계적·종합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목표이다.
사회 내에서 흐릿해져 가는 기억을 다시 기록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다리를 놓는 작업이 몇 군데에서 동시에 진행중이다.
국가의 잘못된 행로에 휘말려,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이 극한상황에 놓인 결과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름 없는 노병들이 젊은이들에게 이야기로 남기고자 하는 것은 그런 전쟁의 진실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을, 일본이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모두의 재산으로 조중히 간직해야 하겠다.
전장의 현실에서 눈을 돌린 공허한 논란이 정치의 장에서까지 펼쳐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멀지 않은 장래에, 전쟁을 체험한 세대는 모두 사라진다. 하지만 그 후로도 우리는 '전후(戦後)'의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Posted by CARPE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