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중반. 하교길에 엄마 눈을 피해 친구들과 드나들던 오락실에서는, 온갖 게임기들 틈에서 떡하니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컴퓨터(오락실용으로 개조된 MSX1)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스틱과 버튼 대신 알 수 없는 단추가 잔뜩 박힌 요상한 판때기에, 게임화면 대신 이따금씩 글씨만 쏴악~ 하고 나오는 파란 화면. 50원 동전을 넣으면 대충 이런 식의 메뉴가 떴다.
1. 베이직
2. △△△△(게임, 90%의 확률로 「마성전설」)
3. ★★★★(역시 게임, 75%의 확률로 「알파로이드」)
4. ◇◇◇◇(이것도 게임, 오락실에 따라 다양)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1번을 누르면 돈 버린다는 것과, 어찌어찌 게임을 시작해도 10분이 지나면 저절로 꺼진다는 사실을 학습시켜 준 이 게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조금 시간이 흘러, '재믹스'니 'IQ2000'이니 하는 단어들이 TV와 잡지를 타고 입소문에 오르내리던 무렵. 그날도 동네
오락실에 갔다가 엄마에게 볼때기를 잡혀 집으로 끌려온 꼬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잽싸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 너 자꾸 오락실 갈래? 엄마가 가지 말랬지!
- 싫어! 애들 다 가는데 나만 안 가면 심심해!
- 거기 가면 눈만 버리고 좋은 거 하나도 없어요!
- 아니야, 같이 놀면 재밌어!
- 그거 순 오락만 하는 거잖아!
- 공부하는 것도 있어! 이거 봐!
라면서 증거(?)로 끄집어낸 것은 친구한테 빌려온 「컴퓨터학습」이니 「MSX와의 만남」같은 당시 유행하던 컴퓨터 잡지들. 뭔
말인지도 모르는 기사 페이지를 대충 펼쳐놓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떠들어댔지만… 언제나 결론은 "나 컴퓨터(= 게임) 하고 싶어!"
결국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이렇게 게임 이야기로 블로그를 꾸역꾸역 채우고 있으니, 역시 난 어릴 때부터 이쪽으로 싹수가 텄다고 해야 되려나?
▷공부가 되는 게임!
…주저리가 쓸데없이 길어졌으니 거두절미하고.
저
당시 오락실에 놓여 있던 이른바 '합팩' 스타일의 컴퓨터 게임 중에 유독 내 눈길을 끄는 물건이 있었으니, 바로 이 글의 재료가
된 「몽키 아카데미」였다. 게임 내용 때문인지 오락실 컴퓨터에는 원제목보다 「산수공부」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팩을 꽂고 부팅하면 친숙한 코나미 롬팩의 시작화면. 숫자키로 플레이어와 입력도구, 레벨을 선택한다.
게임이 시작되면 풍선이 퐁퐁퐁퐁 터지고 수식이 나타난다. 플레이어는 걸개를 당겨 물음표에 맞는 숫자를 찾아내서 화면 위에 있는 친구 원숭이에게 전달해야 한다.
맞다고 생각하는 숫자가 나오면 SELECT(에뮬레이터가 blueMSX라면 END)키를 눌러 확인. 틀리면 ×표가 뜨며, 세 번을 계속해서 틀리면 사망.
정답을 맞히면 걸개가 있던 자리에 고리가 내려온다. 고리를 몸에 끼우고….
화살표가 뜨는 위치로 가서 친구 원숭이에게 전해주면 스테이지 클리어. 같은 방식으로 일정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다시 레벨 선택화면으로 돌아간다.
화면을 돌아다니며 훼방을 놓는 게는 과일로 응징!
처음에는 간단한 덧셈뺄셈으로 시작해서, 곱하기 나누기를 거쳐
마지막 5레벨에는 무려 괄호풀이도 나온다!
뭐… 요즘 세상에 이 정도 문제라면 세살배기 꼬맹이도 코웃음칠 수준이지만….
거창한 수식어니 이름값은 다 빼놓고, 오로지 '추억'이란 양념 하나로 배 터지도록 즐길 수 있는 게 이런 고전게임 아니겠소?
-_-)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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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Yturtle at 2007/07/09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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