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용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출발했다가 지금은 콘솔용 액션인 무쌍 시리즈가 더 유명해져 버린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 본가(?)로도 10편이 넘는 작품이 나왔지만, 그 초기작을 접해 보거나 직접 플레이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디스켓 3장(세이브 디스켓 포함)이라는 대용량에 컬러모니터 및 음악카드를 지원하는, 1990년 당시 최고수준의 스펙을 자랑하며 PC 유저들의 밤을 하얗게 불태웠던 삼국지2.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해진 회사 로고와 소개문.
 

허큘리스, simcga, ADLIB 카드… 그리움을 넘어 이제는 역사 저편에 화석처럼 묻혀버린 이 단어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린모니터에서 에뮬레이션으로 고작 4색을 표시하는 게 보통이던 시절, 은은한 BGM과 함께 컬러모니터로 펼쳐지는 화려한 16색 오프닝은 감동 그 자체였다.
 

새로 게임을 시작하면 시나리오는 6개. 초기설정된 연대는 지금 시리즈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플레이할 인원과 자신의 군주, 게임 난이도 및 잡다한 사항을 결정해 주면 게임 시작.
PC판에서는 신군주 플레이가 되던가 안 되던가… MSX2판에서는 군주를 결정할 때 [최대 군주수+1]을 입력해 주면 신군주를 선택할 수 있다.
 

메뉴는 0번부터 19번까지 숫자키를 입력하여 선택. 마우스가 그리 흔하지 않던 이 무렵에 발매된 초기 코에이 시뮬레이션 작품들은 키보드 오른쪽의 키패드 11키(0~9, Enter)만으로 플레이가 가능했다.
무장 능력치도 지력·무력·매력 3가지로 땡. 개발은 지력만 높으면 되고, 1인당 병사 수는 무력에 관계없이 무조건 100(= 1만)이 최대. 정치력이나 지휘력같은 세분화된 능력치가 등장한 것은 다음 작품인 3부터이다.
관우는 이때만 해도 중국 쪽 전통 이미지에 가까운 얼굴이었는데… 후속작으로 가면서 섬나라 취향에 맞춰 여기저기 깎고 다듬더니만 지금은 성형괴인.
 

쌀 풀어서 민심 얻으며 열심히 개발해 밑천 모으고, 내고장 인재를 발굴하거나 충성심 낮은 딴 나라 무장을 꼬셔오면서 조금씩 세를 불려나간다. 내정화면은 키패드와의 인내력 싸움(이라 적고 숫자놀음이라 읽자).
이따금씩 지나가던 밀사가 걸리거나 다른 군주가 보낸 사신이 찾아오기도 한다. 농사철에는 메뚜기나 가뭄·홍수같은 재해도 일어나고, 별똥별 떨어지면 '누가 죽겠다'며 소문도 돌고… 그러고 보니 이 시절부터 이벤트는 풍부하군.
 
수많은 이벤트 중에서도 단연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초선과의 만남!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한 사나이의 기록이 여기 있으니 일독을.(15금 화상 주의)

초기 삼국지 시리즈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전투! 때가 됐다 싶으면 앞뒤 잴 필요 없다.
 

한 번에 침공 가능한 최대 병력은 5만. 우선은 부대를 배치하고…
무력이 높은 장수가 있으면 전쟁 시작시에 딱 한 번 일대일 대결을 할 수 있다. 장수의 무력 = 체력이며, 10합을 싸울 동안 상대방의 체력을 0으로 만들면 승리. 운좋게 자신보다 무력이 높은 장수를 일대일에서 이겼다면 무력이 상승한다.
무력이 99인 주제에 유독 일대일에 약한 관우. 80대 무장들에게도 걸핏하면 깨져서 사람 속을 긁어놓았다. 무력 80짜리 아들(관평)은 허저한테도 막 이기고 하던데. -┏
 

전투의 기본은 역시 빙 둘러싸고 다굴치기. 일제공격시에 PC스피커로 울려나오는 '또르르르르~'하는 비프음이 향수를 느끼게 한다.
적 대장을 잡거나 본성을 점령하면 승리. 대장은 100% 본성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운이 억세게 좋지 않은 한은(화공을 했더니 본성에 불이 옮겨붙는다든지) 결국 대장 부대를 전멸시킬 때까지 싸워야 한다. 30일 안에 결판이 나지 않으면 승부는 다음 달로 계속.
 

전쟁이 끝나면 포로 중에서 쓸만한 무장을 등용할 수 있는데, 사실모드로 플레이하면 원작에서처럼 충신불사이군을 외치며 뻗대는 녀석들이 가끔 나온다.(조조군의 허저, 유장군의 장임 등등) 2에서는 감옥에 가두고 갱생시키는 메뉴가 없기 때문에 난처한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는 계속 풀어주면서 마지막 영토까지 몰아붙였다가 잡으면 거부를 못 한다.
상대방 군주는 외교로 굴복시키지 않는 이상 절대 부하로 들일 수 없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놓아줬다간 후방 공백지에 깃발을 꽂아서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니… 역시 목을 쳐서 후환을 없애는 게 최고.
천하통일의 길은 피로 물든 수라의 길.
 

중간생략 여차저차해서 모든 땅을 점령하면 드디어 천하통일!
부하들이 나와서 한 마디씩 축하인사를 올린다.
 

새 시대의 아침이 밝아오고… 평화를 되찾은 백성들과 전승을 만끽하는 병사들. 어그러졌던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 굴러가기 시작한다.
 
 
수호지, 삼국지, 신장의 야망, 대항해시대, 로얄 블러드….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수십 번씩 엔딩을 보고, 키패드에 인쇄된 숫자가 닳아 지워지도록 즐기던 게임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당시의 작품들을 꺼내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을 함께 지내온 올드팬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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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Old Game Fan at 2007/11/24 11:25

제목 : 삼국지 시리즈
옛날 용산의 어느 게임점에서 삼국지1 패미콤판 정품팩을 손에 넣었다. 본격적인 시뮬레이션 게임은 난생 처음이었는데, 일본어가 난무해서 언어의 장벽이 무척 높아 보였다.하지만 게임월드의 MSX판 삼국지 공략과 일본어사전을 참조로 하나하나 게임 진행법을 익혀 나가기 시작했다. 패미콤판은 MSX판과 달리 명령어가 히라가나로 되어 있어서 익히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명령어를 누르면 나오는 소박하고 느린 그래픽은 그때도 참 고풍스럽다고 느꼈다.내가 직......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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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RPE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