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윈드 데일(Icewind Dale, 이하 IWD)」 + 확장팩인 「하트 오브 윈터(Heart of Winter, 이하 HOW)」 + 추가 확장패치인 「트라이얼 오브 루어마스터(Trials of the Luremaster, 이하 TOL)」을 플레이하고 나서 작성한 글입니다. 전투 부분에 관한 서술은 NORMAL 난이도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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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모니터에서 만나는 D&D의 세계
R.A.살바토레의 동명 3부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이스윈드 데일」은, 테이블 토크 롤플레잉 게임(TRPG) 「어드밴스드 던전스&드래곤스(Advanced Dungeons&Dragons, 이하 AD&D)」의 캠페인 중 하나인 포가튼렐름(Fogotten Realms)의 세계를 배경으로, 페이룬(Faerun) 대륙 북부에 자리잡은 '세계의 줄기(The Spine of the World) 산맥' 일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바이오웨어는 캐릭터 클래스, 시간 경과, 전투와 같은 D&D의 룰을 컴퓨터에서 구현하기 위해 인피니티 엔진을 제작하였는데, 본작은 「발더스 게이트(Baldur's Gate, 이하 BG)」 시리즈와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Planescape : Torment, 이하 토먼트)」에 이어 인피니티 엔진을 사용해 만들어진 세번째 타이틀이다.
포가튼 렐름의 주된 무대 중 하나인 페이룬 대륙 지도. '검해(Sea of Swords)'나 '발더스 게이트', '네버윈터'같은 고유명사를 찾아보면 D&D의 거대한 세계관을 조금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피니티 엔진을 사용한 디아블로'?
동일한 엔진을 사용해 같은 원작의 룰을 재현한 롤플레잉 게임이지만, 이들 세 작품군은 각자 다른 스타일과 개성을 추구하고 있다.
BG 시리즈 : 포가튼 렐름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장대한 메인스토리와, 그 안에 잘 버무려진 수많은 서브퀘스트 및 캐릭터/NPC와의 상호작용(각종 대화 및 연애이벤트).
드넓은 황야와 어둠 속 던전을 탐험하며, 진짜로 살아있는 듯한 파티 동료들끼리의 대화를 들으며 '동료들과 함께 D&D 세계를 모험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토먼트 : 다원우주인 플레인스케이프를 배경으로 삼은 독특한 세계관과 불사신인 주인공 캐릭터. 깊이있는 대화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집요하고도 진지한 성찰은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시나리오의 최정점을 제시하였다.
IWD에서는 전작들이 내세운 이러한 요소들을 간략화, 또는 배제하고 '전투'에 중점을 두었다. 모든 파티 캐릭터는 게임을 시작할 때 플레이어가 직접 만들어야 하며, BG나 토먼트처럼 도중에 만나는 NPC를 동료로 삼거나 할 수는 없다. 또한 두 작품에서 구현된 세부 규칙(클래스 키트, 전투스타일 등)이나 캐릭터들의 상호작용(대화나 연애이벤트)은 모두 생략되었다.
스토리 역시 '주인공 일행이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들어 모험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판타지 영웅물. 메인시나리오 외에도 물론 이런저런 서브퀘스트가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풍부한 캐릭터 관련 이벤트, 깊이있는 대화나 스토리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전작들에 비해 시나리오 분량도 짧고, 그나마도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을 전투가 차지하는 탓에 취향에 따라서는 찬반이 갈릴 수도 있는 작품이다. 스토리와 대화를 중시한다면 BG나 토먼트, 퀘스트나 이벤트같은 소소한 즐길거리에 신경쓰지 않고 메인스토리만을 시원시원 진행하려는 플레이어에게는 IWD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D&D RPG의 시작은 캐릭터 만들기부터!
일부 매니악한 팬들 사이에서는 본편 게임보다 더 재미있다는 평을 듣기도 하는 캐릭터 능력치 굴리기. 다이스 신의 가호를 빌며 합계 100 이상에 도전해 보자.
끝없이 이어지는 전투, 전투…. 한번에 상대해야 하는 적들의 숫자도 엄청나다. 모 던전에서는 장비란에 가득 채워간 화살이 다 떨어져서 활잡이 캐릭터가 칼을 들고 육탄전에 나서는 사태까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첫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상점에는 +3, +4짜리 마법무기가 흔하게 널려 있다. 조금만 진행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강력한 무기와 마법주문들이 쏟아져나온다.
플레이타임이 훨씬 긴 BG1과 토먼트에서도 최강무기가 +2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IWD의 게임 밸런스가 전투 쪽으로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투의 비중이 크다고 해서 IWD을 '전투만 하다 끝나는 단순한 학살게임'으로 결론내리는 것은 성급한 짓이다. RPG에서 필수라고도 할 수 있는, 각자의 행동양식에 따라 플레이어 캐릭터에 반응하는 NPC들이 마을과 던전 등에 엄연히 존재하며, 이들과의 대화 역시 게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파티 성향에 따라 동일한 이벤트라도 선·악의 어느 한쪽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고, NPC와 대화할 때 캐릭터의 카리스마(혹은 지능/지혜)에 따라 추가되는 선택지로 불필요한 전투를 피하거나 더욱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등,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에게는 게임을 마음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주어진다.(주1)
플레이 타임을 늘려 보겠다며 터무니없이 강한 적이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벤트, 몬스터/아이템 도감이나 달성률 따위를 들이밀고 반복노동을 강요하는 일본식 RPG보다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주인공 파티가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정통 RPG(정확히는 위의 세 작품)가 내 취향에는 훨씬 잘 맞았다.
NPC는 물론, 싸워야 할 캐릭터까지도 -능력치만 충분하다면- 세 치 혀로 속이거나 구슬러 넘길 수 있다.
주1) 이른바 정통 RPG에서 내세우는 '자유도'라는 것도 스토리나 이벤트 문제 때문에 결국은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그나마도 선택의 여지란 것이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대다수 일본식 RPG와 비교해 보면 플레이어가 몸으로 느끼는 차이는 엄청나다.
실제로 토먼트에서는 최종보스(!!)조차도 칼을 뽑지 않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으며, BG2에서는 악 성향 파티로 극소수의 스토리 관련 중요인물을 제외한 게임 내의 모든 NPC -마을사람이나 지나가는 행인은 물론, 심지어 동료가 되는 캐릭터까지!!- 를 지도상에서 쓸어버리며 진행하는 '학살 플레이'마저 가능했을 정도이다.
▷알찬 듯 모자란 듯한 확장팩 - Heart of Winter
세계의 줄기를 모험하던 주인공 일행은 한 폐가에서 자신들을 '계시에 나타난 영웅'이라고 부르는 낯선 사내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북부지대 선주민들과 텐 타운즈의 이주민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며,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힘을 빌려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HOW를 깔지 않았다면 이 문은 절대 열 수 없다.
'곰 부족의 무당'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욜더(Hjollder). 주인공 일행을 새로운 모험으로 인도할 캐릭터이다. IWD부터 플레이하고 있을 경우, 모든 파티원이 레벨 9 이상이 되기 전에는 HOW를 시작할 수 없다.
IWD을 하던 도중에 HOW를 시작해 버리면 다시는 본편으로 돌아올 방법이 없으므로, 얌전히 IWD을 클리어한 다음 데이터를 읽어들여 확장팩을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BG와 마찬가지로, 본편이 발매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IWD도 확장팩이 발매되었다. 한창 달아오르다가 뚝 끊겨버린 듯한 스토리라인에 대한 불만, 그리고 열심히 키운 캐릭터들과 좀 더 함께하고 싶다는 플레이어들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본편과 별 관련도 없는 밋밋한 스토리, 크게 어렵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던전 등은 둘락의 탑(주2)이나 그 이상을 바랐던 많은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대 영웅의 혼이 자기 몸에 깃들어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북방 선주민의 지도자 윌프딘(Wylfdene). 그의 진의를 파헤치는 작업이 곧 HOW의 메인스토리로 이어진다.
새로운 적들도 꽤 나오긴 하는데, 녀석들이 강해진 만큼 내 파티도 컸단 말이지.
그래도 최종보스로 드래곤이 나오시니 간신히 확장팩의 체면치레는….
드래곤씩이나 돼서 뭐 이리 약해빠졌어! 역시 ×××(자체검열)라서 그런가?
사실 이 확장팩의 진가는 스토리나 던전보다도, 개량된 시스템이나 새로 추가된 요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HOW에서 시스템적으로 추가·변경된 사항을 대강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아이템과 스펠 및 클래스 특수능력, 캐릭터 화상, 캐릭터 사운드, 숙련자를 위한 고난이도(+ 많은 경험치) 모드 '하트 오브 퓨리(Heart of Fury)' 추가
-경험치 상한선이 올라가 모든 클래스가 레벨 30까지 도달 가능
-해상도 변경 : HOW는 800*600 해상도를 기본 지원하며, IWD과 함께 설치하면 IWD도 800*600에서 플레이 가능(비공식적으로 1024*768 이상도 지원)
-단축키를 이용한 인터페이스 창 제거, 아이템과 문 식별 가능
앞서 발매된 「BG2 : Shadows of Amn」에서 개선된 요소들과, 여기에 더해 추가 아이템이나 해상도 변경 등으로 보다 쾌적한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또한 경험치 상한선이 올라감과 동시에 고난이도 모드가 추가되어, 반복 플레이시에도 숙련자들이 싫증을 내지 않도록 밸런스가 조정되었다.
인생의 깊이와 경험이 절절하게 배어나오는 명대사들 -
"여자 마음이란 신비하고, 아름답고, 그러면서도 잔혹한 것. 같은 여자라면 알 수 있지. 그 중에서도 제일 잔혹한 건 바로 겨울여왕의 심장이야. 그녀의 고동에는 사랑이 아닌 상실이 담겨 있고,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으니까."
"인간의 심장은 부서지더라도 치유되거나 상대를 용서할 수 있네. 하지만 겨울여왕의 심장은 얼음과도 같아서, 한번 부서지면 산산이 흩어져 버리고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어."
HOW의 결론 : 여자가 독하게 한을 품으면 100년 후에도 아이스 스톰이 몰아친다!
IWD 본편은 완전 한글화를 거쳐 정식발매되었지만, 불행하게도 HOW는 한글화는커녕 발매조차 되지 못했다. 때문에 한국에서 확장판을 플레이하려면 어둠의 길에 의지하거나, 한참 후에 수입된 합본 패키지인 「Icewind Dale Ultimate Collection(IWD + HOW + IWD2 + 공략본 PDF 파일 + 사운드트랙 등이 수록)」을 구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찌어찌 HOW를 입수했다 하더라도 한글화된 IWD에는 HOW가 설치되지 않기 때문에 영어판 IWD도 필요해진다. 결국 확장판까지 넘어가면 정발판 IWD는 무용지물이….(정발되자마자 달려가서 질렀는데!!)
그러한 이유로 게임매장에서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질러버린 IWD 콜렉션. BG2 콜렉션도 함께 진열돼 있었지만 그쪽은 자금사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
※패키지 중에서 IWD의 각 CD는 낱장 종이케이스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플라스틱 CD케이스는 보관을 위해 별도로 구입한 것입니다.
주2) Durlag's Tower - BG1의 확장팩 「Tales of the Sword Coast」에서 추가된 던전. 빡빡한 전투와 악독한 트랩, 머리아픈 수수께끼 등으로 당시 BG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쳤다.
▷확장팩의 확장패치(?!) - Trials of the Luremaster
'HOW도 너무 짧다!'는 유저들의 불평을 무마하기 위해(??) 제작된 추가 확장패치. 인터넷 등에서 무료로 배포되었지만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HOW가 깔려 있어야 한다.
설치가 끝나고 게임을 시작하면 론리우드 술집에 새 NPC가 출현. 말을 걸어 함께 가자고 하면 TOL을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모험의 땅에 도착한 주인공 일행. 그들 앞에 나타나 연이어 수수께끼를 내놓는 루어마스터의 정체는?
드래곤과의 처절한 싸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네 명의 기사, 탐욕과 명성에 눈이 먼 영주로 인해 벌어진 옛 성의 비극이 조금씩 그 베일을 벗는다….
둘락의 탑이나 감시자의 요새(Watcher's Keep, BG2의 확장팩)와 마찬가지로 던전 + 수수께끼가 혼합된 형식의 확장패치. 시작부터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며, 짜증나는 마법공격과 강력한 적들이 줄줄이 쏟아지는 후반부 전투는 HOW보다 더 어려워졌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스토리의 핵심이기도 한 수수께끼는 단계마다 노래 형식으로 힌트가 주어지는데, 지도상의 지형지물과 연관지어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본인 역시 마지막 포탈의 수수께끼에서 삽질을 거듭한 끝에, 결국 영어로 된 해외 공략게시판을 뒤져 간신히 해결.
한창 잘 나갈 때는 둘락의 탑도 감시자의 요새도 전부 다 혼자서 끝장을 봤는데…. orz
지도를 샅샅이 뒤져서 주어진 힌트의 실마리를 찾아내야 한다.
만고불변의 진리 : 진실은 영원하다.
▷총평
컴퓨터에서 충실하게 구현된 D&D 룰로 꺼져가던 정통 롤플레잉 게임계에 부활의 불씨를 지핀 발더스 게이트.
인간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고찰로 RPG에서 다다를 수 있는 시나리오의 극한을 보여준 토먼트.
캐릭터의 개성이나 시나리오의 깊이에서는 이들에게 밀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간결한 룰과 시스템, 단순명쾌한 스토리로 초보자들도 큰 부담 없이 D&D 세계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은 아이스윈드 데일이 가진 미덕이다. 게다가 정식발매된 오리지널판은 완벽 한글화가 되었으므로 언어의 장벽에 신경쓰지 않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주3)
D&D 기반 게임에 관심이 있지만 '시스템이 복잡하다'거나 '설정을 잘 모르겠다'는 등의 이유로 망설였던 사람이라면, 입문삼아 본작을 한 번쯤 플레이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주3) 그러나 최종보스 직전에 게임이 멈춰버리는 버그 때문에 마지막까지 열심히 달려온 플레이어들을 나락으로 내던져 버렸다. 한국어판에서만 발생하는 버그로, 한글화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건드려 생긴 문제로 보인다. 결국 유통사에서 패치를 내놓아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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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엘민 at 2008/09/2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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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모니터에서 만나는 D&D의 세계
R.A.살바토레의 동명 3부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이스윈드 데일」은, 테이블 토크 롤플레잉 게임(TRPG) 「어드밴스드 던전스&드래곤스(Advanced Dungeons&Dragons, 이하 AD&D)」의 캠페인 중 하나인 포가튼렐름(Fogotten Realms)의 세계를 배경으로, 페이룬(Faerun) 대륙 북부에 자리잡은 '세계의 줄기(The Spine of the World) 산맥' 일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바이오웨어는 캐릭터 클래스, 시간 경과, 전투와 같은 D&D의 룰을 컴퓨터에서 구현하기 위해 인피니티 엔진을 제작하였는데, 본작은 「발더스 게이트(Baldur's Gate, 이하 BG)」 시리즈와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Planescape : Torment, 이하 토먼트)」에 이어 인피니티 엔진을 사용해 만들어진 세번째 타이틀이다.
▷'인피니티 엔진을 사용한 디아블로'?
동일한 엔진을 사용해 같은 원작의 룰을 재현한 롤플레잉 게임이지만, 이들 세 작품군은 각자 다른 스타일과 개성을 추구하고 있다.
BG 시리즈 : 포가튼 렐름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장대한 메인스토리와, 그 안에 잘 버무려진 수많은 서브퀘스트 및 캐릭터/NPC와의 상호작용(각종 대화 및 연애이벤트).
드넓은 황야와 어둠 속 던전을 탐험하며, 진짜로 살아있는 듯한 파티 동료들끼리의 대화를 들으며 '동료들과 함께 D&D 세계를 모험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토먼트 : 다원우주인 플레인스케이프를 배경으로 삼은 독특한 세계관과 불사신인 주인공 캐릭터. 깊이있는 대화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집요하고도 진지한 성찰은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시나리오의 최정점을 제시하였다.
IWD에서는 전작들이 내세운 이러한 요소들을 간략화, 또는 배제하고 '전투'에 중점을 두었다. 모든 파티 캐릭터는 게임을 시작할 때 플레이어가 직접 만들어야 하며, BG나 토먼트처럼 도중에 만나는 NPC를 동료로 삼거나 할 수는 없다. 또한 두 작품에서 구현된 세부 규칙(클래스 키트, 전투스타일 등)이나 캐릭터들의 상호작용(대화나 연애이벤트)은 모두 생략되었다.
스토리 역시 '주인공 일행이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들어 모험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판타지 영웅물. 메인시나리오 외에도 물론 이런저런 서브퀘스트가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풍부한 캐릭터 관련 이벤트, 깊이있는 대화나 스토리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전작들에 비해 시나리오 분량도 짧고, 그나마도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을 전투가 차지하는 탓에 취향에 따라서는 찬반이 갈릴 수도 있는 작품이다. 스토리와 대화를 중시한다면 BG나 토먼트, 퀘스트나 이벤트같은 소소한 즐길거리에 신경쓰지 않고 메인스토리만을 시원시원 진행하려는 플레이어에게는 IWD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일부 매니악한 팬들 사이에서는 본편 게임보다 더 재미있다는 평을 듣기도 하는 캐릭터 능력치 굴리기. 다이스 신의 가호를 빌며 합계 100 이상에 도전해 보자.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첫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상점에는 +3, +4짜리 마법무기가 흔하게 널려 있다. 조금만 진행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강력한 무기와 마법주문들이 쏟아져나온다.
플레이타임이 훨씬 긴 BG1과 토먼트에서도 최강무기가 +2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IWD의 게임 밸런스가 전투 쪽으로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투의 비중이 크다고 해서 IWD을 '전투만 하다 끝나는 단순한 학살게임'으로 결론내리는 것은 성급한 짓이다. RPG에서 필수라고도 할 수 있는, 각자의 행동양식에 따라 플레이어 캐릭터에 반응하는 NPC들이 마을과 던전 등에 엄연히 존재하며, 이들과의 대화 역시 게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파티 성향에 따라 동일한 이벤트라도 선·악의 어느 한쪽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고, NPC와 대화할 때 캐릭터의 카리스마(혹은 지능/지혜)에 따라 추가되는 선택지로 불필요한 전투를 피하거나 더욱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등,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에게는 게임을 마음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주어진다.(주1)
플레이 타임을 늘려 보겠다며 터무니없이 강한 적이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벤트, 몬스터/아이템 도감이나 달성률 따위를 들이밀고 반복노동을 강요하는 일본식 RPG보다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주인공 파티가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정통 RPG(정확히는 위의 세 작품)가 내 취향에는 훨씬 잘 맞았다.
주1) 이른바 정통 RPG에서 내세우는 '자유도'라는 것도 스토리나 이벤트 문제 때문에 결국은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그나마도 선택의 여지란 것이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대다수 일본식 RPG와 비교해 보면 플레이어가 몸으로 느끼는 차이는 엄청나다.
실제로 토먼트에서는 최종보스(!!)조차도 칼을 뽑지 않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으며, BG2에서는 악 성향 파티로 극소수의 스토리 관련 중요인물을 제외한 게임 내의 모든 NPC -마을사람이나 지나가는 행인은 물론, 심지어 동료가 되는 캐릭터까지!!- 를 지도상에서 쓸어버리며 진행하는 '학살 플레이'마저 가능했을 정도이다.
▷알찬 듯 모자란 듯한 확장팩 - Heart of Winter
세계의 줄기를 모험하던 주인공 일행은 한 폐가에서 자신들을 '계시에 나타난 영웅'이라고 부르는 낯선 사내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북부지대 선주민들과 텐 타운즈의 이주민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며,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힘을 빌려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IWD을 하던 도중에 HOW를 시작해 버리면 다시는 본편으로 돌아올 방법이 없으므로, 얌전히 IWD을 클리어한 다음 데이터를 읽어들여 확장팩을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BG와 마찬가지로, 본편이 발매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IWD도 확장팩이 발매되었다. 한창 달아오르다가 뚝 끊겨버린 듯한 스토리라인에 대한 불만, 그리고 열심히 키운 캐릭터들과 좀 더 함께하고 싶다는 플레이어들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본편과 별 관련도 없는 밋밋한 스토리, 크게 어렵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던전 등은 둘락의 탑(주2)이나 그 이상을 바랐던 많은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드래곤씩이나 돼서 뭐 이리 약해빠졌어! 역시 ×××(자체검열)라서 그런가?
사실 이 확장팩의 진가는 스토리나 던전보다도, 개량된 시스템이나 새로 추가된 요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HOW에서 시스템적으로 추가·변경된 사항을 대강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아이템과 스펠 및 클래스 특수능력, 캐릭터 화상, 캐릭터 사운드, 숙련자를 위한 고난이도(+ 많은 경험치) 모드 '하트 오브 퓨리(Heart of Fury)' 추가
-경험치 상한선이 올라가 모든 클래스가 레벨 30까지 도달 가능
-해상도 변경 : HOW는 800*600 해상도를 기본 지원하며, IWD과 함께 설치하면 IWD도 800*600에서 플레이 가능(비공식적으로 1024*768 이상도 지원)
-단축키를 이용한 인터페이스 창 제거, 아이템과 문 식별 가능
앞서 발매된 「BG2 : Shadows of Amn」에서 개선된 요소들과, 여기에 더해 추가 아이템이나 해상도 변경 등으로 보다 쾌적한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또한 경험치 상한선이 올라감과 동시에 고난이도 모드가 추가되어, 반복 플레이시에도 숙련자들이 싫증을 내지 않도록 밸런스가 조정되었다.
"여자 마음이란 신비하고, 아름답고, 그러면서도 잔혹한 것. 같은 여자라면 알 수 있지. 그 중에서도 제일 잔혹한 건 바로 겨울여왕의 심장이야. 그녀의 고동에는 사랑이 아닌 상실이 담겨 있고,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으니까."
"인간의 심장은 부서지더라도 치유되거나 상대를 용서할 수 있네. 하지만 겨울여왕의 심장은 얼음과도 같아서, 한번 부서지면 산산이 흩어져 버리고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어."
HOW의 결론 : 여자가 독하게 한을 품으면 100년 후에도 아이스 스톰이 몰아친다!
IWD 본편은 완전 한글화를 거쳐 정식발매되었지만, 불행하게도 HOW는 한글화는커녕 발매조차 되지 못했다. 때문에 한국에서 확장판을 플레이하려면 어둠의 길에 의지하거나, 한참 후에 수입된 합본 패키지인 「Icewind Dale Ultimate Collection(IWD + HOW + IWD2 + 공략본 PDF 파일 + 사운드트랙 등이 수록)」을 구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찌어찌 HOW를 입수했다 하더라도 한글화된 IWD에는 HOW가 설치되지 않기 때문에 영어판 IWD도 필요해진다. 결국 확장판까지 넘어가면 정발판 IWD는 무용지물이….(정발되자마자 달려가서 질렀는데!!)
※패키지 중에서 IWD의 각 CD는 낱장 종이케이스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플라스틱 CD케이스는 보관을 위해 별도로 구입한 것입니다.
주2) Durlag's Tower - BG1의 확장팩 「Tales of the Sword Coast」에서 추가된 던전. 빡빡한 전투와 악독한 트랩, 머리아픈 수수께끼 등으로 당시 BG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쳤다.
▷확장팩의 확장패치(?!) - Trials of the Luremaster
'HOW도 너무 짧다!'는 유저들의 불평을 무마하기 위해(??) 제작된 추가 확장패치. 인터넷 등에서 무료로 배포되었지만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HOW가 깔려 있어야 한다.
새로운 모험의 땅에 도착한 주인공 일행. 그들 앞에 나타나 연이어 수수께끼를 내놓는 루어마스터의 정체는?
드래곤과의 처절한 싸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네 명의 기사, 탐욕과 명성에 눈이 먼 영주로 인해 벌어진 옛 성의 비극이 조금씩 그 베일을 벗는다….
둘락의 탑이나 감시자의 요새(Watcher's Keep, BG2의 확장팩)와 마찬가지로 던전 + 수수께끼가 혼합된 형식의 확장패치. 시작부터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며, 짜증나는 마법공격과 강력한 적들이 줄줄이 쏟아지는 후반부 전투는 HOW보다 더 어려워졌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스토리의 핵심이기도 한 수수께끼는 단계마다 노래 형식으로 힌트가 주어지는데, 지도상의 지형지물과 연관지어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본인 역시 마지막 포탈의 수수께끼에서 삽질을 거듭한 끝에, 결국 영어로 된 해외 공략게시판을 뒤져 간신히 해결.
한창 잘 나갈 때는 둘락의 탑도 감시자의 요새도 전부 다 혼자서 끝장을 봤는데…. orz
▷총평
컴퓨터에서 충실하게 구현된 D&D 룰로 꺼져가던 정통 롤플레잉 게임계에 부활의 불씨를 지핀 발더스 게이트.
인간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고찰로 RPG에서 다다를 수 있는 시나리오의 극한을 보여준 토먼트.
캐릭터의 개성이나 시나리오의 깊이에서는 이들에게 밀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간결한 룰과 시스템, 단순명쾌한 스토리로 초보자들도 큰 부담 없이 D&D 세계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은 아이스윈드 데일이 가진 미덕이다. 게다가 정식발매된 오리지널판은 완벽 한글화가 되었으므로 언어의 장벽에 신경쓰지 않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주3)
D&D 기반 게임에 관심이 있지만 '시스템이 복잡하다'거나 '설정을 잘 모르겠다'는 등의 이유로 망설였던 사람이라면, 입문삼아 본작을 한 번쯤 플레이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주3) 그러나 최종보스 직전에 게임이 멈춰버리는 버그 때문에 마지막까지 열심히 달려온 플레이어들을 나락으로 내던져 버렸다. 한국어판에서만 발생하는 버그로, 한글화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건드려 생긴 문제로 보인다. 결국 유통사에서 패치를 내놓아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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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엘민 at 2008/09/23 10:15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이 3종 세트야 말로 RPG 매니아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죠 ^^; 다시 플레이해도 예전만큼의 감동이 다시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콤돌이 at 2008/09/23 10:17
좋은글 잘 봤습니다. 오오 멋지셔요...그런데 이게임 영어...로군요...ㅜ.ㅜ
Commented by 죠타로 at 2008/09/23 10:19
다 져버리고 독기를 품고 밤을 지새개 만드는 작품들 중 하나지요...-┏전 카페님이 하도 추천해 주셔서 손댔다가 중독 직전에 잘라버렸습니다.
Commented by CARPEDIEM at 2008/09/23 12:04
엘민 /
몇십 번을 플레이해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마약같은 게임들...
콤돌이 /
크게 어려운 단어나 표현은 없으니 대학생 정도의 독해실력이라면 별 무리 없이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죠타로 /
쳇, 보낼 수 있었는데. -_-
몇십 번을 플레이해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마약같은 게임들...
콤돌이 /
크게 어려운 단어나 표현은 없으니 대학생 정도의 독해실력이라면 별 무리 없이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죠타로 /
쳇, 보낼 수 있었는데. -_-
Commented by 엔트리스 at 2008/11/09 10:08
..HOW도 한글패치가 있던걸로 기억합니다만
역시 영문 IWD+영문 HOW를 깔아야만 되더군요
역시 영문 IWD+영문 HOW를 깔아야만 되더군요
Commented by CARPEDIEM at 2008/11/09 15:04
결국 둘 다 영문판이 있어야 되는 거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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