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에뮬을 꺼내 돌려 보며 그 시절을 추억하다.
소개글에는 '요즘에도 충분히 즐길 만한 게임'이라고 칭찬 비슷하게 적어 놓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 도스 시절 게임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 친구들이 지금 와서 붙잡고 있기엔 대단히 괴롭고 짜증이 날 물건이다.

1994년작이니 발매된 지도 햇수로 10년이 훌쩍 넘어가고. 얄팍한 플로피 용량에 동영상이나 성우는 어림도 없거니와, 플레이하는 도중에 계속 디스크 갈아끼우란 메시지 때문에 흐름이 끊기기 일쑤. MIDI음원에선 그나마 좀 낫지만 내장음원으로 틀면 효과음도 변변치 않은 빈약한 음악 등등. 이런 거야 당시 기술력과 회사 자본의 한계이니 어쩔 수 없다 치고.
첫 작품이라 밸런스 조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게임을 하면서 제일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극악한 무기 명중률. 진짜 더럽게 안 맞는다. 정밀사격을 해도 번번이 빗나가고, AP(주1) 아끼겠다고 일반사격으로 밀어붙이면 10여발이 넘는 탄약이 바닥나도록 한 발도 안 맞는 경우까지 심심치 않으니, 장비화면에 표시된 명중률을 믿고 아무거나 붙여놓았다간 첫 미션부터 분노와 절망에 떨며 전원을 내리게 될 것이다.
빈사상태의 적을 눈앞에 두고 AP가 부족해 정밀사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캐논 한 방을 맞히지 못해 100회 가까이 로딩을 반복한 적도 있다. 엔딩 볼 때까지 용케 마우스를 내던지지 않은 게 스스로도 대견할 따름.

주1) Action Point. '행동력'이라고 옮길 수 있으며, 해당 캐릭터가 1턴 동안 할 수 있는 행동을 수치화한 것. 이동이나 공격 등을 하면 줄어들고 턴이 지나면 원래대로 회복된다. 정밀사격은 일반사격에 비해 명중률이 높은 대신 소비하는 AP가 2배. 작전시 캐릭터의 최대 AP가 기껏해야 20~30 정도인 본작에서 한 번에 6~8 정도의 AP를 소모하는 정밀사격은 게임 진행을 더디게 하는 주범이다.

뭐, 이 시절 게임들이야 이 정도 삽질은 당연한 거였다. 오토매핑같은 사치품은 상상도 못 하던 당시에 몇십 층은 기본인 던전 뺑뺑이, 센 적에게 막힐 땐 세이브/로드 무한반복이나 경험치 노동으로 레벨 MAX 채워 밀고 나가기, 숨겨진 선택문 하나를 꺼내기 위해 동일인물과 동일한 대화를 무한반복… 등등등.
유저들의 마조히스틱한 근성을 자극하는 이런 플레이가 아직까지도 서비스나 미니게임이랍시고 버젓이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일본게임도 그다지 변한 건 없어 보이지만.

어쨌든 오만 삽질 끝에 끝장은 봤으니 덤으로 엔딩 CG.


이거 한 장에 글씨 서너 페이지 나오고 끝, 그 다음엔 스탭 롤. 정말 이게 다냐고? 그럼 이 시절 플로피로 나온 물건에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나. 게임 재미있고 진득하게 들러붙어 즐겨서 본전 뽑았으면 그걸로 됐지.
추가요소나 특전? DOS판 파워돌은 세이브 데이터가 후속작인 파워돌2에 연동되어, 열심히 키운 캐릭터 능력치를 그대로 이어받아 시작할 수 있다. 물론 데이터 컨버팅을 -당연히 디스켓으로- 거쳐야 하므로 윈도우용 에뮬에 의지하고 있는 요즘의 대다수 플레이어들에겐 그림의 떡. 무엇보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파워돌1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발매 당시엔 전쟁 시뮬레이션이라는 본래의 모습보다는 '미녀들이 잔뜩 나와 싸우는 로봇 전쟁물'로 소개되며 천사제국과 함께 유명세를 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녀석이 쭉빵 미소녀만을 앞세운 단순한 캐릭터 게임이 아니란 것은, 이후로도 꾸준한 개량을 거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속작들과, 지금까지 뿌리깊게 남아있는 팬들을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평을 하자면, 18금 미소녀 텍스트물 천지로 변해가던 일본 PC게임 시장에서 본격 전쟁물의 명맥을 이어온 작품으로 의미를 두고 싶다.

슈발츠쉴트와 더불어 초기의 코가도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게임으로,이후 10여년에 걸쳐 아홉 작품이나 만들어지며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파워돌 시리즈. 그 시작은 여느 시리즈물과 다를 바 없는 소박하고, 약간(??)은 낯설고 어려운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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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RPEDIEM